'중국은 깨끗지 않다'는 편견을 깨주다
(지난<중국>=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어딜 가도 물이 있는 도시, 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 시내를 걷다 보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을 쉽게 볼 수 있다. 샘은 물길을 만들고, 물길은 거대한 호수를 탄생시켰다. 물가에는 바람에 잎을 살랑대는 초록빛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어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중국은 깨끗하지 않아 꺼려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지난은 이러한 생각이 편견임을 입증해주는 도시다. 거리는 청결하고 주민들은 여유롭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도 자유여행으로 충분히 떠날 수 있는 곳이다.
산둥성은 역사가 유구한 고장이다. 지난 중심지에 있는 취안청(泉城) 광장에는 산둥성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인물의 동상들이 늘어서 있다. 유가를 만들어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를 비롯해 공자의 학풍을 이어받은 맹자(孟子), 타인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묵자(墨子), 병법서를 쓴 손자(孫子),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최고의 책사로 등장하는 제갈량(諸葛亮)이 모두 산둥성 출신이다. 산둥성 사람들은 이처럼 학식이 뛰어난 사람을 많이 배출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 9월 지난 여행 중에 만난 한 현지인 기자는 "중국에서 상대를 부를 때 '선생'이라고 하는 곳은 산둥성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은 인구가 1억 명에 육박하는 산둥성의 중심부에 있는 성도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해안 도시인 칭다오(靑島)나 옌타이(煙臺), 웨이하이(威海)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에는 바다가 없지만 아침에 산책하기 좋은 운하와 석양빛이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샘은 지난의 상징이다. 시의 중심 광장 이름에 샘 천(泉) 자를 쓴 이유다. 큰 샘은 135개, 작은 샘은 800여 개가 있다고 한다. 이들 샘물의 온도는 연중 12∼18℃를 유지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겨울에는 기온과 수온의 차이 때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난의 샘 가운데 가장 이름난 곳은 바오투취안(표<跳에서 兆 대신 勺>突泉)이다. 노란색 기와를 얹은 정자 앞에 연못이 있는데, 수면 위로 끊임없이 기포를 만들어내는 샘을 볼 수 있다. 청나라 황제가 썼다는, '부딪는 여울'이라는 뜻의 '격단'(激湍)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인상적이다. 주변에는 다른 샘이 많고, 나무가 우거져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오투취안이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장소라면 헤이후취안(黑虎泉)은 주민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호랑이 석상 옆의 동굴에서 발원한다는 헤이후취안에는 약수를 담으러 오는 이가 많다. 바오투취안의 방문객 손에는 카메라, 헤이후취안을 찾은 사람 손에는 커다란 물통이 들려 있다.
운하는 호수인 다밍후(大明湖)를 북쪽에 두고 있다. 헤이후취안 근처에서 보트를 타면 다밍후까지 선상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배 안에서는 지난의 샘에서 난 물을 넣은 따뜻한 차를 제공하고, 지난의 역사와 생활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운하에서 다밍후로 갈 때는 갑문을 통과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밍후는 꽤 넓다. 길쭉한 호수 곳곳에는 정자가 있고, 연꽃과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청나라 문인들이 "절반은 호수요, 절반은 도시"라고 노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특히 해 질 무렵 들르면 고요하고 황홀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지난은 대도시인 만큼 야경이 화려하다. 취안청 광장에는 밤을 흥겹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어른부터 아스팔트 위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밤을 즐긴다. 지하 쇼핑몰에는 가격대가 적당한 식당과 대형 마트가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인터콘티넨탈 호텔 뒤편으로 이동하면 된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전통문화거리를 본떠 조성했다는 상가 구역이 있다. 젊고 세련된 분위기의 상점들이 골목골목 배치돼 있다. 산둥성 향토 음식과 음료, 디저트를 파는 식당이 많아 식도락을 즐기기에 좋다.
◇ 공자 고향 '취푸'…당일치기 나들이 가능
'유삼공 지천하'(遊三孔 知天下). 지난 남쪽에 있는 도시 취푸(曲阜)에서 자주 보게 되는 문구다. '삼공'(三孔)을 가면 천하를 알게 된다는 뜻인데, 삼공은 공자와 관련된 유적 3곳을 지칭한다.
지난에서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어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취푸는 행정구역상 지닝(濟寧)시에 속하지만, 지닝보다 더 유명하다. 취푸의 지명도를 높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공자. 취푸는 주나라 노국(魯國)의 도읍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공자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중국 국무원이 선정한 역사문화도시에 포함됐다.
취푸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삼공'으로 향한다. '삼공'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주거 공간인 '공부'(孔府), 공자와 후손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공림'(孔林)으로 구성된다.
공자는 약 2천500년 전에 출생한 중국 학자다. 본명이 공구(孔丘)인 그는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자의 부모는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던 터라 그의 신분은 높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공자는 꾸준히 공부해 높은 학식과 덕망을 얻었지만,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했다. 공자는 인(仁)에 바탕을 둔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국가 간 전쟁이 빈번했던 춘추전국시대에 그의 말을 들을 권력자는 없었다.
그러나 공자의 학문적·정치적 영향력은 사후에 커졌다. 공자가 토대를 놓은 유가는 불교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이자 종교가 됐다. 특히 조선은 중국보다 더 충실하고 견고하게 유교 이념을 받아들인 나라였다. 선대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유교의 종교 공간이었는데, 제례가 온전하게 전승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삼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공묘다. 명나라 때 대대적으로 중건됐는데, 면적이 13만3천㎡로 우리나라 덕수궁의 두 배에 달한다. 덕수궁이 현대에 비록 축소되기는 했지만, 개인을 위한 사당이 대한제국의 황궁보다 크다는 사실부터 놀라움을 준다.
공묘의 배치는 향교와 서원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를 따른다. 전학후묘는 앞쪽에는 교육을 위한 공간, 뒤쪽에는 제향 공간을 두는 것을 지칭한다. 평지에 조성된 공묘는 주요 문과 건축물이 일직선 상에 있고, 건물의 규모 또한 크다. 자금성(紫禁城)의 건축 스타일처럼 반듯하고 웅장하다.
◇ 논어 구절 5개 외우면 三孔 무료 관광
공묘에는 유독 문이 많다. 세 개의 석문을 통과하고 또다시 세 개의 문을 지나면 제왕이 하사한 책을 보관하는 규문각(奎文閣)이 있고, 그 너머에 공묘의 정전인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한다. 노란색 기와지붕을 얹은 대성전은 길이가 45.6m인 9칸 건물로, 그 앞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행단(杏壇)이 있다.
공부는 공묘와 붙어 있다. 송대에 공자의 후손을 '연성공'(衍聖公)으로 봉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후손이 살지 않아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 정문 앞에 있는 회화나무 고목과 수석, 분재가 눈길을 끈다.
삼공 가운데 마지막 장소인 공림도 넓기는 매한가지다. 무덤은 10만 개가 있고, 나무도 10만여 그루가 있다고 한다. 카트를 타고 가다 보면 공자와 그의 아들 무덤이 나타나는데, 중국인들의 참배 열기가 뜨겁다. 향을 피운 뒤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취푸시는 삼공을 관광지로 활용하면서도 공자의 사상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공자의 사상을 담은 논어(論語)의 구절 5개만 외우면 삼공을 무료로 돌아볼 수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공부도 하고, 유적지를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공자 마케팅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취푸 사람들은 공자를 내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다. 공자의 사상을 연구하는 공자연구원이 있는 취푸에는 조만간 공자박물관이 개관한다. 유가의 역사와 공자의 작품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취푸 사람의 공자 사랑이 이 도시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궁금해진다.
◇ 여행 정보
▲ 가는 법 = 대한항공이 인천에서 지난까지 직항편을 운항한다. 인천에서는 오후 1시 10분, 지난에서는 오후 3시 5분에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50분 안팎이다. 운임은 왕복 기준으로 30만5천원부터.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를 타면 2시간 15분 뒤에 닿는다.
▲ 숙소 = 취안청광장 주변에 괜찮은 호텔이 모여 있다. 인터콘티넨탈, 소피텔, 하얏트 리젠시 등 체인 호텔도 많다. 숙박비는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
▲ 음식 = 산둥 요리는 중국 8대 음식에 속한다고 알려졌다.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청요릿집을 운영한 사람 중에 산둥성 출신이 많았기 때문인지 음식이 전반적으로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달콤하고 짭조름하게 졸인 음식이 많다. 술도 즐겨 마시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중국집에서 판매하는 백주(白酒)인 '공부가주' '연태고량주'는 산둥성을 대표하는 술이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기념품은 얇은 전병. 바삭거리는 식감이 차와 잘 어울린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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