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기지 국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차 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다. 냉전이 종식된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수십개국에 수백 곳의 미군 기지가 있다. 특히 한국은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미군 기지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왜 아직도 이렇게 해외 미군 기지가 많은 것일까. 만약 어느 나라가 미국 가까이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미군의 해외 군사기지 존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바인 미국 아메리칸대 인류학 교수가 쓴 책 '기지 국가'(원제 Base Nation)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책은 미군 해외기지가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고 표현하며 미군 기지가 과연 세계 평화에 긍정적이고 필요한 존재인지, 주둔국은 물론 미국 자체의 이익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를 짚어나간다.
미국의 해외기지 확장에는 냉전 시기 '전진 전략'이 바탕이 됐다. 소련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미국의 군사력과 가치를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전진 전략 사고를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은 기지가 많을수록 안보가 튼튼해지고 전쟁 억지력이 확보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시기에는 일면 설득력을 가졌을 주장이지만 이제 소련이라는 적도, 냉전체제도 사라진 지금도 '전진 전략'의 생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책은 미군 기지가 안보 유지에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남한과 북한의 대결을 한 사례로 제시한다.
북한의 관점에서는 세계 최강의 미군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타당하며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이 붕괴해 한반도가 통일되면 수만 명의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되는 결과가 되는 만큼 북한을 지원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논리를 들어 미군 기지는 평화를 유지하고 한반도를 더 안전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소련이 사라진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적인 대응을 자극해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할 위험이 있다고 반박한다.
책은 그 밖에도 미군 기지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한다. 독성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 문제, 주둔 미군이 저지르는 성범죄 등 각종 범죄,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기지 건설, 독재 정권과의 결탁, 기지 주변의 성매매 산업에 대한 암묵적인 용인 등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책은 나아가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도 해외에 미군 기지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해외 주둔 기지 유지를 위해서는 국내에 기지를 두는 것보다 더 많은 직접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미 공군이 기지 한 곳을 운영하는데 연평균 2억 달러 이상이 드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미군 내 공군기지 운영 비용의 2배가 넘는다.
책은 미국이 해외 군사기지를 유지하는데 2014년에만 최소 850억 달러가 소요됐을 것이라고 추산하며 미국인들의 세금에서 군산복합체들이 이득을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모든 미군 기지를 당장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군 기지가 정말 안보와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고 필요성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의 해외기지가 존재해야 하는 필요성을 일일이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기지를 전부 폐쇄하고 한편으로는 세계 곳곳의 갈등을 군사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외교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마바람 펴냄. 유강은 옮김. 572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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