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사건 발생 직후 유족 고발…수사 도중에도 사인 논쟁 거듭
새 정부 검찰 수뇌부 교체 후 결론…의료기록 열람·유출 의혹은 계속 수사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경찰의 시위 진압용 살수차(일명 물대포)가 쏜 물줄기에 맞은 후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책임은 사건 발생 23개월여 만에야 검찰 단계에서 결론이 나왔다.
국가 공권력의 남용에 의한 사건이라는 결론과 함께 현장 지휘부와 살수요원 등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검찰이 소극적인 수사로 일관하다가 정권 교체 이후에야 속도를 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수사 결론은 백씨 유족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지 700일째 되는 날인 17일에야 도출됐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살수차가 쏜 물줄기에 맞고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 불명에 빠졌다. 이후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9월 25일 숨졌다.
백씨의 딸 백도라지·민주화씨 등 유족은 같은 해 11월 18일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관계자들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백씨가 10개월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검찰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이에 작년 9월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사건의 복잡성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가 이렇게 더디게 진행된다면 진상 규명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검찰총장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검찰은 백씨의 사망을 전후로 시위 진압을 지휘한 당시 구은수 서울청장, 장향진 서울청 차장 등 피고발인들과 참고인을 조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백씨의 사망을 둘러싸고 논쟁이 거듭됐다.
백씨 사망 직후 주치의이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사망 원인을 병사로 기록해 유족과 시민단체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검찰과 경찰은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 집행을 연달아 시도했으나 유족 측의 완강한 거부로 집행되지 못했다.
부검영장 집행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 직후 극우 성향 누리꾼들이 제기한 '빨간 우의' 남성의 정체를 둔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시위 현장 동영상에서 빨간 우의 차림의 남성이 물대포를 맞아 넘어지면서 백씨를 덮치는 듯한 모습을 두고 이 남성이 백씨를 가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수사 결과에서 "빨간 우의 남성은 사망 원인과 관련이 없었다"고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사망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작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서울대병원은 사망 9개월 만인 지난 6월 백씨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수정했다.
검찰도 박영수 특별검사팀 출신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임하는 등 수사팀 수뇌부가 교체된 이후 독일 등 해외 사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다시 수사에 속도를 붙였다.
결국, 검찰은 700일에 걸친 수사 끝에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늦어졌다는 지적에 대해 "검토할 부분이 많고, 사안이 무겁다 보니 독일 등 유사 사례를 수집하고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며 "선례가 없는 사건이어서 독일 기록을 참고하고 검찰시민위원회에 회부해 의견을 듣는 절차 등으로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백씨의 사망과 관련해 제기된 다양한 의혹들에 대해 계속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백씨의 의료정보를 청와대·경찰에 유출했다는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수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의료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한 직원 등 관계자 161명을 고발한 사건도 혜화경찰서가 지난 7월 156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남은 수사에 대해서도 "수사가 마무리되고 있으나 좀 더 검토할 것이 있다"며 "최대한 신속히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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