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야당, '네 탓' 공방…야당 "총리 사퇴하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16일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지며 사망한 지중해 섬나라 몰타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의 암살에 테러 집단이 자주 쓰는 강력한 폭발물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언론 타임스 오브 몰타는 18일 경찰 관계자를 인용, 다프네 가루아나 갈리치아(53) 기자를 죽이는 데 테러 집단이 대규모 공격을 자행할 때 흔히 쓰이는 폭발 물질인 '셈텍스'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폭발의 강도와 목격자의 진술에 근거할 때 '셈텍스'가 쓰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갈리치아 기자의 승용차는 운행 중이던 길가에서 수 십 m 떨어진 들판에서 뼈대만 남은 채 발견돼 폭발의 강도를 짐작케 했다.
몰타 당국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네덜란드 법의학자 등 외국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이번 사건의 책임을 둘러싸고 몰타 집권당과 야당의 정치적 공방도 가열됐다.
몰타 야당 국민당의 아드리언 델리아 대표는 정부가 살해된 갈리치아 기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무스카트 총리의 사임을 촉구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에 대해 "갈리치아 기자 스스로 경찰의 보호를 거부했다"고 반박하는 한편, 역으로 델리아 대표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과의 인터뷰에서 "갈리치아 기자가 최근 야당 지도자의 의혹을 폭로하는 데 주력한 점에 비춰 야당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지목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갈리치아 기자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델리아 대표가 돈세탁, 매춘 등의 의혹이 있다는 기사를 올린 바 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몰타와 같은 나라에서 직업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갈리치아 기자는 내가 야당 대표일 때부터 공격한 나의 최대 적수였지만, 그것은 그의 본업이었다"고 주장했다.
갈리치아 기자는 지난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한 회사의 소유주가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며, 이 회사의 계좌에 아제르바이잔의 권력자 일가로부터 받은 불법 리베이트를 은닉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무스카트 총리 측근의 비리를 연달아 폭로해 그를 궁지에 몰았다.
역시 탐사보도 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갈리치아 기자의 아들은 전날 "몰타에 처벌받지 않는 풍조를 만연케 하고 사기꾼들로 내각을 채워 어머니의 죽음에 공모했다"며 무스카트 총리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갈라치아 기자는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과 몰타 사회 곳곳의 부패 의혹을 가차 없이 폭로해 '1인 위키리크스'라고 평가받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언론인이었다.
몰타 섬 북부에 있는 자택 인근에서 자신 소유의 차량을 몰다가 차가 폭발하며 현장에서 숨졌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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