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세 번째 장편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타인을 완벽하게 속이는 가짜 인생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곧잘 등장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리플리 증후군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허구이건 현실이건, 가짜 인생을 다룬 이야기는 참과 거짓을 명쾌하게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결과 진부한 교훈으로 마무리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단지 신분과 경력을 속이지 않는다고 해서 완벽하게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내밀함을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정한아(35)의 세 번째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은 삶에 관한 진짜와 가짜의 이분법적 경계가 생각보다 선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친밀한 이방인'은 평생 신분을 속인 채 살다가 행방불명된 이유미와 그의 정체를 추적하는 소설가 화자의 이야기다. 화자가 '난파선'이라는 소설을 쓴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발견하면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그 소설이 자신의 미발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화자는 광고를 낸 선우진을 만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소설가 행세를 한 그의 남편이 사실은 이유미라는 이름의 여자였다는 것이다.
몇 년 간 제대로 된 작품을 내지 못하고 있던 화자는 이유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한다. 선우진에게 건네받은 일기와 주변 인물 인터뷰로 복원한 이유미는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재수생 신분으로 가짜 대학생활을 하며 교지 편집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남자를 만났다. 명문 음대 출신이라고 속여 피아노학원에 취업했다가 평생교육원 강사로 대학까지 발을 들였다. 실버타운에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취업하고 몇 차례 결혼도 했다.
"그녀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욕심이 그녀를 자꾸만 무리한 사칭으로 몰고 갔다." 점점 뻔뻔하고 대담해지는 거짓말과 정교하게 위조된 자격증명, 발각의 위기를 모면하는 기지 등이 가짜 인생 이야기의 필수요소다. 작가는 여기에 더해 계속된 거짓말의 바탕에는 이유미의 인정욕구뿐 아니라 불우했던 유년 시절 같은 불가항력의 환경이 있었음을 반복해 상기시킨다.
소설은 거짓말로 실체를 감춘 이유미의 삶과 그에 비하면 정상적이고 평탄했던 화자의 삶을 번갈아 비춘다. 그러나 남편이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외도하는 화자, 거짓말에 중독됐으면서도 끊임없이 번민하고 진심 어린 사랑을 만나기도 하는 이유미는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작가는 참과 거짓이 여러 층위에서 뒤엉킨 막판 반전도 심어뒀다.
"나는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꾸는 헛된 꿈, 허무맹랑한 욕망이 내 것처럼 달콤하고 쓰렸다.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착각, 혹은 간극 속에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 25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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