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은 수학공식 아냐…냉장고 비우고 제철음식 먹어라"

입력 2017-10-22 07:00   수정 2017-10-22 09:01

"사찰음식은 수학공식 아냐…냉장고 비우고 제철음식 먹어라"

'사찰음식 명장'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계호(67) 스님이 건네준 '가죽(참죽나무의 새순) 부각'을 입에 넣었다. 얇은 찹쌀풀이 바삭바삭했다. 깻잎도 아닌, 방아도 아닌 향긋한 것이 혀에 닿자마자 스르르 풀어졌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진관사 수륙재'가 열리던 지난 14일, 북한산 자락의 은평구 진관사를 찾았다. 양희은의 '가을 아침' 가사처럼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한 날씨였지만, 경내는 발 디딜 곳 없이 북적였다. 따끈한 쌍화차 잔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수륙재를 진두지휘하던 계호 스님과 만날 수 있었다.

계호 스님은 최근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됐다. 50년 가까이 사찰음식을 연구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인데, 사실 스님의 이름은 '고수'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개인 요리사였던 샘 카스 전 백악관 부주방장, 세계적인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Noma)의 수석요리사인 르네 레드제피가 진관사에서 조리법을 배워간 건 유명한 일화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환한 얼굴의 스님에게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언제부터 음식에 관심을 가졌나.

▲ 외가가 서당을 하셔서 늘 손님 치를 일이 많았다. 외할머니와 모친이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따라 배웠다. 1968년 열여덟 살에 출가를 결심하고 고향인 강원도 묵호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진관사까지 왔다. 그땐 여기가 다 딸기밭이고 논두렁이었는데, 그걸 바라보며 음식을 만들 때면 절로 기운이 났다.

--사찰음식이 왜 주목받는다고 생각하나.

▲ 조금 먹고(少) 웃고(笑) 채식하는(蔬) 사찰음식의 '삼(三)소' 정신이 위안을 줘서 아니겠나.

--사찰음식의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 생명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과 인격을 만든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요리를 시작할 때 마음부터 가다듬는다. 자비로운 마음, 화합된 마음으로 임할 때 조화로운 음식이 나온다. 음식 만드는 사람들은 불, 물, 칼과 같은 극단적인 것을 다루는 만큼 더욱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님만의 비법이 있으신가.

▲ 비법이라니?(웃음) 사찰음식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뭘 넣으면 맛있어진다는 식의 비법은 없다. 감자 하나도 굽고 채를 썰고 튀기고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다만, 사찰음식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은 청정(淸情)한 재료,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유연(柔軟)함, 법도에 맞는 여법(如法)함을 지켜야 한다.

--사실 바쁜 현대인들이 지키긴 어려워 보인다.

▲ 가정에서 이를 다 지키기 어렵다는 건 잘 안다. 그렇다면 냉장고에 쟁여놓고 먹는 습관이라도 고쳐라. 실온의 제철음식을 그때그때 해먹어라. 몸의 온도가 타고난 대로 유지되기만 하더라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싸다고, 몸에 좋다고 많이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병난다.

--건강에 좋은 재료라도 많이 먹지 말라는 뜻인가.

▲ 과유불급이다.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먹을 만큼만 먹어야 한다. 금가루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눈에 들어가면 아픈 티끌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스님은 공양하고 가라며 기자를 이끌었다. 진관사 신도부터 지나가던 등산객들까지 맛난 한 끼를 감사히 받고 있었다. 아삭한 오이지에 버섯이 든 구수한 쌈장, 젓갈을 넣지 않은 절집 김치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추운 겨울을 맞이할 기운을 든든히 받은 것 같았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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