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채무 제로] (상) 지자체 너도나도 "빚 털었어요"

입력 2017-10-21 10:31   수정 2017-10-21 10:52

[동전의 양면, 채무 제로] (상) 지자체 너도나도 "빚 털었어요"

광역단체 첫 경남도 선언 이후 확산…지방선거 앞두고 증가세

"건전 재정 기틀" vs "선거용 치적 쌓기" 평가 엇갈려

(전국종합=연합뉴스) 경기도 용인시는 경전철 건설로 한때 전국 채무 1위라는 불명예와 함께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지방자치단체였다.

그랬던 용인시가 올해 1월 17일 '채무 제로(Zero)'를 선언했다.

당시 정찬민 용인시장은 "2014년 7월 취임 때 있던 지방채 4천550억원, 용인도시공사 금융채무 3천298억원 등 총 7천848억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자까지 포함해 8천211억원을 애초 공약 이행 일정보다 2년 가까이 앞당겨 상환해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재정 건전성 확보를 명분으로 '채무 제로'를 선언하는 전국 지자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단체장은 임기 만료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채무 제로를 주요 치적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채무를 줄이는 게 능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며 채무 청산의 실효성과 지방재정의 손익 계산을 놓고 갑론을박, 찬반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채무 제로 선언 확산 계기를 만든 지자체는 경남도였다.

경남도는 2012년 12월 보궐선거로 당선한 홍준표 전 지사의 강력한 빚 청산 드라이브로 지난해 6월 채무 제로를 발표했다.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였다.

홍 전 지사 당선 이듬해인 2013년 1월 경남도 채무는 1조3천488억원이었다. 하루 이자만 1억원정도가 나갔다.

홍 전 지사는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전담조직을 만들어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 상당한 논란과 갈등을 불거졌지만 홍 전 지사 측은 선심성 사업 폐지, 보조사업 재정 점검, 진주의료원 폐쇄, 산하기관 구조조정, 복지 누수 차단, 투자사업 지출 감축, 체납세와 탈루 세원 발굴, 채무 조기상환 이자 절감 등을 통해 빚을 청산했다고 평가했다.

결과론적으로 경남도 재정자립도는 2013년 34.4%에서 올해 36.8%로 개선되고, 수차례 '재정 건전화 기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 채무 '0' 지자체 매년 늘어…226곳 중 100곳 넘을 전망

경남도나 용인시처럼 '빚 없음'을 의미하는 채무 제로를 선언하는 광역·기초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올해 경기도, 전북도 같은 광역지자체는 물론 용인시, 충남 천안시·논산시, 전북 남원시·정읍시, 전남 곡성군·영암군, 강원도 강릉시·삼척시 등도 채무 제로 대열에 합류했다.

2017년도 예산안 결산이 이뤄지면 전체 226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100곳 이상이 채무 없는 곳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자체 채무는 '현금으로 갚아야 할 돈'으로, 부채와 함께 재정 건전성을 파악하는 기준이다.

부채는 채무뿐 아니라 임대보증금, 퇴직금 충당금, 카드결제 미지급금, 선수금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빚이다.

채무 유무 또는 채무 축소는 단체장 능력 평가의 주요기준으로 인식돼 지자체와 단체장은 채무 제로 달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임기 만료가 다가올수록 그렇다.

지자체들은 예산 감축, 대규모 투자사업 보류나 조정, 수익원 다양화, 강력한 체납세금 징수, 유휴 공유재산 매각 등으로 예산을 절약해 빚을 갚는다.

경기도는 2조630억원의 채무를 갚았고 나머지 6천억원을 올해 안에 상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국비를 확보하고 투자·보조사업을 재검토하는 한편 지방채 발행을 억제했다.

삼척시는 124억원을 갚기 위해 예비비까지 삭감하는 초강도 긴축재정을 운용했다.

경남도는 채무 변제 비용을 마련하고자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원하고 무상급식을 중단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재정 부담 줄여" 평가에 "경제 활력 저해" 비판도

지자체와 단체장들은 채무가 없어져 재정운영이 수월해지고 이자 절약 등으로 새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채 전액 상환을 통한 재정 건전화'를 최우선 시정과제로 삼아 585억원을 갚은 황명선 논산시장은 "채무 없는 도시가 된 것은 건전한 재정을 운영할 기틀을 다진 것을 뜻한다"며 채무 제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채무액 1천695억원을 갚은 구본영 천안시장은 "연간 수억원의 차입금 이자 부담을 줄여 시 재정운용이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경남도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해마다 2천억원 넘는 채무 상환과 이자 지급으로 나가던 재원을 미래 50년을 위한 사업, 서민복지 사업 등 지역균형발전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채무 제로 행정이 '임기 말 단체장들 치적 쌓기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단체장들이 다가올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앞다퉈 채무 감축 성과 달성에만 혈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채무 감축에 치중하다 보면 인프라 확충 등이 소홀해져 자칫 미래 발전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북도의 한 관계자는 "채무는 재출마하려는 현직 단체장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라며 "단체장 능력 과시는 물론 재입성을 위한 우호 여론 조성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빚 없이 잘 살았다'고 해석돼 정부 평가나 각종 보조금 지급, 공모사업 등에서도 유리할 수 있지만, 이면에는 중장기 투자를 막아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등 부정적인 지적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최영수 이은중 임보연 황봉규 최찬흥 손상원 이승형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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