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직장내 갈등 문제 지문에 활용…트럼프노믹스·가계부채 등 주로 경제현안 집중 출제
'채용비리' 금감원 논술주제는 '공직윤리'…노벨상 수상작가 소설도 활용
같은 날 시험에 치열한 눈치작전…한국은행 응시자 과반 포기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인터넷 전문은행 금리에 대해 약술하라."(기업은행[024110] 필기시험), "가계부채가 경제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논술하라."(금융감독원)
21일 실시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9개 금융기관·공기업의 필기시험에서는 최근 정책 과제로 부상한 경제 문제나 경제 이슈가 대거 등장했다.
◇ 경제 현안·실무 묻고 소설 활용한 논술도 출제
한국은행은 전공시험에서 '인구 고령화와 통화 정책의 관계'(경제학), '최근 임금인상 이슈에 대한 견해'(경영학) 등을 물었다.
응시자가 장기적·구조적 대응을 고민해야 하는 이슈에 관한 생각을 밝히도록 한 셈이다.
논술에서는 미디어 발달에 따라 소통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고 갈등완화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응시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한 문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이른바 '가짜 뉴스' 등을 둘러싼 논란 등에 착안해 출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은 관계자는 전했다.
금융감독원은 경제학 전공시험에서 가계부채가 경제안정에 미치는 영향, 가계부채가 시스템리스크로 작동하는 기제, 한계 차주 관리방안, 한계 기업 관리방안 등을 논술형으로 출제했다.
공통 논술에서 '공직 윤리'를 주제로 제시했다.
금융감독이라는 공적 업무에 관한 응시자의 인식을 에둘러 물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채용비리 의혹으로 금감원 전임 수뇌부가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있고 국정감사에서도 질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직 윤리를 시험 주제로 선택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금감원은 4차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산업의 기대효과와 금감원의 대응방향도 논술에서 물었다.
규제(Regulation)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레그테크'(Regtech), '규제 테스트베드'(위탁테스트) 등의 용어를 사용하도록 방향을 제시했다.
기업은행은 '트럼프노믹스가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저임금이 국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 '디지털 금융의 발전방향'이라는 세 가지 주제 중 어느 하나를 골라 논술하도록 했다.
트럼프노믹스, 최저임금, 디지털 금융은 각각 세계 경제, 국내 경제, 금융산업의 최근 화두다.
약술형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 금리', '젠트리피케이션', 생체인증 기술' 중 하나를 택해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현상을 묻는 문제를 냈다.
네덜란드 병은 네덜란드의 사례에 착안해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 발견으로 일시적 호황을 누리던 국가가 물가 상승이나 환율 하락 등의 부작용으로 장기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겪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수출지원정책이라는 고유 업무와 연계해 직무 수행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직무수행능력평가(객관식)에서 신용보증 약정의 법률적 성격을 물었고 보험금 계산 방법을 제시한 후 이를 활용해 보험금을 계산하도록 하는 등 실무와 밀접한 문제를 던졌다.
기술보증기금은 이공계 응시자를 대상으로 한 직무 논술에서 정부의 '일자리 5년 로드맵' 중점과제 중 '혁신형 창업' 촉진 정책에 관한 지식이나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내놓았다.
최근 기술보증기금이 혁신 기업 창업 지원 등을 중요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논술에서 '직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남녀·세대 간)에 대한 넛지(nudge)식 대응 방안에 대해 논하라'고 주문했는데 문학적 소양과 시사·경제 지식을 함께 갖춰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남녀 갈등을 드러낸 부분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세대 간 갈등을 드러낸 부분을 발췌해 지문으로 제시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의 영어 단어로, 강요나 인센티브 없이 현명한 선택을 끌어내는 방법을 가리킨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중앙에 파리 모양을 그려 넣자 이용자들이 소변으로 파리를 맞추려고 노력했고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는 것이 넛지의 사례로 거론된다.
◇ 중복 응시 수험생 결시…'같은 날 시험' 늘어나 응시율 하락
금융기관·공기업의 시험일이 겹치면서 서류 전형에 복수로 통과한 수험생의 결시가 많았다.
응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합격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기관이나 기업을 선택해 필기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서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작전이 치열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은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경쟁률이 지원자의 필기시험 응시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전략적인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필기시험 날짜가 달랐던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금감원이 같은 날 시험에 동참하면서 이른바 'A매치' 참가 기관이 올해 9개로 늘어난 만큼 필기시험 응시율은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서류 전형을 통과해 필기시험 자격을 부여받은 응시자가 2천97명이었는데 필기 응시율은 44.7%였다고 밝혔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응시율이 74.5%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무역보험공사는 예년보다 응시율이 10% 포인트 낮아졌고 수출입은행도 다소 하락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작년에 단독으로 필기시험을 실시했을 때 응시율이 70∼80%에 달했지만, 올해는 다소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