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독립국 설립 계획은 또 처참하게 좌절됐다는 쪽으로 관측의 추가 기울고 있다.
지난달 26일 밝은 미소로 KRG 깃발을 흔들며 투표소로 향한 쿠르드 주민들은 한 달 새 실의에 빠졌다.
이달 16일 이라크 정부군의 탱크가 북부 키르쿠크 등지에 진격하고 KRG의 군조직인 페슈메르가가 철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KRG의 재정적 기반이자 독립군 설립 후에도 국가산업의 동력이 될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내주면서 분리독립의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역내 불안을 부른다며 독립 주민투표에 반대하던 서방은 키르쿠크 충돌을 방관했고 쿠르드계의 요구도 묵살당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사태의 원인이 쿠르드계의 부패, 지도부의 국제정세 오판, 내부 분열이라고 22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이라크, 시리아에서 IS 격퇴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큰 전공을 세운 쿠르드계는 국제사회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었다.
이를 절호의 기회로 보고 분리독립 투표라는 도박을 시도한 이는 쿠르드민주당(KDP)의 마수드 바르자니 수반이었다.
이라크 쿠르드족 독립 운동가 집안 출신인 그는 아버지가 하지 못한 과업을 임기 내 완수하려는 열망이 강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패한 관리들은 유가 폭락으로 급증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분산시키기 위해 바르자니의 민족주의적 열망에 불을 댕겼다.
전 KRG 총리 바르함 살리는 "이번 투표는 한 사람의 의지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부패로 많은 부를 거머쥐고 권력을 남용한 소수가 자신의 자취를 감추려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고 해설했다.
바르자니는 이 같은 내부의 불순 요인을 간과했고, KRG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빚을 돌출 변수도 고려하지 않았다.
유전지대로 이라크 정부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키르쿠크 같은 영유권 분쟁지들을 독립 주민투표에 포함한 것은 최악의 자충수였다는 평가도 있다.결국 투표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당인 쿠르드애국동맹(PUK)이 비밀리에 이라크군의 키르쿠크 진격을 합의했다.
PUK가 지휘하는 쿠르드 병력은 이라크 정부군과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명대가 키르쿠크로 들어올 때 철수해 길을 열었다.
바르자니 수반이 독립 행보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단한 것도 큰 오판으로 지적됐다.
미군이 이라크를 통치할 때 정치고문으로 활동한 에마 스카이는 "바르자니 수반이 KRG가 IS와 싸운 대가로 독립을 기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KRG의 독립투표 추진에 미국은 이라크 정부와의 협상을 요구하며 보류를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KRG가 제안을 거절하자 분개해 이라크 정부군의 키르쿠크 진격을 방관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IS 격퇴전을 벌이면서 바르자니 수반에게 크게 의존하던 미국은 이제는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와 밀착행보를 보이고 있다.
바르자니는 투표 이후 위기가 점점 커지자 단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만 발표했을 뿐 대중의 시야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한 KRG 관리는 바르자니 수반이 사무실에 매일 출근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리는 "우리는 잠시 독립을 연기하고 있지만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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