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우린 아재 그룹…14년간 해체·은퇴 생각한 적도"

입력 2017-10-24 17:18   수정 2017-10-24 20:37

에픽하이 "우린 아재 그룹…14년간 해체·은퇴 생각한 적도"

3년 만에 정규 9집, 차트 정상…"음악으로 따뜻한 한마디 건네고 싶었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타블로(본명 이선웅·37)는 정규 9집이 나오는 날 아침, 딸 하루의 학교에 학부모 상담을 갔다. 두 자녀를 둔 투컷(김정식·36)은 내달 콘서트를 하는 날 아이의 운동회에 참석해야 한다. 2년 전 결혼한 미쓰라(최진·34)는 아직 2세가 없는 신혼이다.

2003년 데뷔해 14주년을 맞은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세 멤버는 모두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아재'가 됐다.

"14주년을 엊그제 맞이한 아재 힙합그룹 에픽하이입니다. (세 멤버가 한국 나이로) 38, 37, 35세인 것을 이젠 받아들여 진심 (차트 성적에 대한)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타블로)

지난 23일 오후 6시 음원 공개 시간에 휴대전화를 꺼놓고 차트를 안 보려 했다지만 이들이 3년 만에 낸 9집 '위브 돈 섬싱 원더풀'(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은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인터뷰한 에픽하이는 더블 타이틀곡 '연애소설'과 '빈차'가 각종 차트 1·2위를 휩쓸고 수록곡들까지 큰 호응을 얻자 그 기쁨을 에둘러 표현했다.

타블로는 "3년의 공백도 있었고 얼마 전 해외로 나간 지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진지하게 '형님 해체하신 거죠?'라고 물었다"며 "방송도 안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정말 기대를 안 하려고 했다. 그 사이 코첼라 등 해외 페스티벌과 해외 투어도 다녔지만 우리가 주목받는 그룹은 아니니 표시가 안 났다"고 웃었다.

그러자 투컷은 "사실 난 기대했다"며 "열심히 뭔가를 했는데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대보다 큰 사랑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앨범 제목처럼 이들은 '멋지게' 작업물을 쌓아올렸다. 피처링 가수로 아이유, 오혁, 사이먼도미닉, 더콰이엇, 송민호, 크러쉬, 넬의 김종완, 이하이, 수현 등 음원 강자들을 한 장의 앨범에 모았다. 1집 '맵 오브 더 휴먼 솔'(Map Of The Human Soul) 때부터 여러 가수를 참여시켜 '오픈 밴드' 느낌을 준 방향성을 이은 셈이다.

"1집과 비교하니 피처링 가수의 수가 되레 줄어들었더라고요. 하하. 데뷔 시절 어떤 음악 하는 그룹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전 토이(유희열)를 꼽았어요. 뚜렷한 색깔이 있으면서도 객원 보컬이 등장해 다양한 감성을 전하는 게 매력적이었죠. 1집 때처럼 이번에도 다양한 초대 손님과 같이했는데 나열해보니 페스티벌 라인업이 됐죠."

섭외 담당은 투컷. '연애소설'에 목소리를 실은 아이유는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목소리여서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이란 주제를 차가운 이미지로 전달해야 해 "아이유가 딱이었다"고. 문자를 보내면 1주일이 지나야 답을 주는 오혁도 기적적으로 5분 만에 연락해줘 '빈차'에 목소리를 보탰다.

피처링 덕을 크게 봤지만 이들의 차트 파괴력은 서정적인 감성에 스민 깊이 있는 가사다. 타블로와 투컷의 전달력 좋은 랩이 공감의 크기를 키웠다.

'우리 한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연애소설' 중)라고 빗대고, '못다 핀 꽃도 모이면 정원을 이루지'('블리드' 중)라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한다. 갈 길은 먼데 택시가 안 잡히는 순간에서 현대인의 피로감을 포착('빈차' 중)하고, 각박해진 세상에 누구나 공감할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라고도 얘기한다. 또 '너의 꿈은 키가 닿는 꿈이길(중략) 주는 만큼 뺏는 것이 성공이니까'('개화' 중)라고 자신들을 보며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경험에서 나온 조언도 한다.

타블로는 "우린 사실 절망에 잘 빠지는 부정적인 성격의 팀"이라며 "하지만 누군가에게 우울한 가사로 공감을 주기보다 이번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온하게 떠 있는 오리도 물밑에선 발을 미친 듯이 움직인다"며 "행복하고 평안해 보이는 사람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절실함, 아픔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물 위의 오리 모습을 보고 음악을 만들겠지만, 우린 물 밑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때론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보편적인 감정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가장 악동스러운 곡인 '노땡큐'에서도 주관적인 잣대로 무분별하게 판단되는 세태를 풍자했지만 그 안에서 자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로 14년간 팀을 유지한 이들은 데뷔 때부터 성공한 팀은 아니었다. 미쓰라와 타블로는 "회사에서도 망했다고 얘기했다"며 "처음 생각보다 잘 돼 있다"고 웃었다.

앨범에는 한때 해체나 은퇴를 고민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던 창작의 시간도 기록돼 있다.

'할 말이 넘치던 10년 전과는 다르게/ 갈수록 하고 싶은 말과 해도 되는 말이 줄고 (중략) 은퇴, 해체/ 매해 목구멍에 담은 단어들인데/ 14년째 못 뱉네'('블리드' 중)

타블로는 "5집의 '연필깎이'에서 펜과 공책 두 개만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듯이 예전엔 포부가 담긴 곡을 많이 썼다"며 "하지만 이젠 펜을 들면 뭔가 무게감이 느껴지고 두려움이 생긴다. 우린 그간 자의든 타의든 더는 음악을 할 수 없겠다고 느낀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고 돌아봤다.

"자의라면, 투컷이 음악적인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서 팀을 해체시킬 뻔한 적이 몇 번 있고요. 타의는 모두 다 아시는 더는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학력 위조 논란)이었죠."(타블로)

멤버들은 팀의 마지막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타블로는 "어떤 팬은 이번이 고별 앨범 같다고 했다"며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그렇게 느낄 만하다. 정말 어느 순간에 어떤 예측하지 못한 일로 더는 앨범을 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매번 마지막 앨범이란 각오로 음악을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존 레넌도 마지막 앨범을 낼 때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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