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문의 잇따라
임종기 환자 신청 사례는 아직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지난 23일 시작된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다만 임종을 앞둔 환자 중 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24일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하 실천모임)에 따르면 어제부터 이틀간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건수는 총 31건이다.
사전연명의료계획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기관(각당복지재단·대한웰다잉협회·세브란스병원·충남대병원)까지 합치면 이 숫자는 훨씬 더 늘 것으로 추정된다.
이인자 실천모임 사무국장은 "사전연명의료의의향서 작성 방법에 대한 문의전화가 24일 하루에만 약 100통이 넘게 왔다"며 "시범사업이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 반응이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같은 일반인들의 반응과 달리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중에는 아직 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몸이 아프기 전에 미리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환자가 작성하는 '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현재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강원대병원·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고려대 구로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영남대의료원·울산대병원·제주대병원·충남대병원(가나다순) 총 10곳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대부분의 환자가 막상 임종이 임박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대한 치료를 받길 희망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효(孝) 문화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픈 부모에게 연명치료를 비롯해 모든 방법을 마지막까지 동원해야 '자식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일반인들의 참여율은 높겠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참여율은 저조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며 "연명의료 참여 여부는 개인의 의사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환자와 보호자가 연명의료의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기관이 전문 상담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직 의료기관이 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시범사업부터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는 "시범사업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의료기관이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어야 한다"며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뒀지만, 일선 의료현장에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또 현재의 시범사업은 심폐소생술·혈액 투석·항암제·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 연명치료 시술 여부에만 너무 관심이 쏠린 경향이 있다"며 "법의 근본 취지에 맞게 연명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