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치오팬, AS로마 유니폼 입은 안네 프랑크 합성사진으로 논란 촉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소녀 안네 프랑크가 생전 남긴 일기를 엮은 '안네의 일기'가 이탈리아 축구장에서 일제히 낭독된다.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는 "이탈리아유대인공동체(UCEI)와 협의해 세리에 A,B,C 등 이탈리아 축구 리그의 다음 번 모든 경기 시작 전에 안네 프랑크의 일기 중 한 구절을 낭독하기로 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 결정은 로마를 연고지로 한 구단 라치오의 과격 축구팬들이 지난 22일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치오와 칼리아리의 경기에 앞서 라이벌 팀인 AS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네 프랑크의 합성 사진을 경기장 한 편에 부착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FIGC는 이번 조치가 라치오 팬들이 저지른 반(反)유대주의 행위를 규탄하고,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FIGC는 또한 이번 주 열리는 모든 프로축구 경기는 물론 주말에 진행되는 모든 아마추어, 청소년 경기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위한 1분 간의 묵념 시간도 엄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대인과 AS로마 팬들을 조롱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라치오 팬의 부적절한 사진은 국내외 유대인 공동체는 물론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등 각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안네 프랑크의 사진을 모욕과 위협에 사용하는 것은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80년 전 반유대주의의 잔혹성에 오염된 이탈리아로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극렬팬들의 행위가 빗발치는 비난을 초래하자 화들짝 놀란 라치오 구단도 이날 발빠른 수습에 나섰다.
클라우디오 로티토 라치오 회장은 이날 팀의 간판 선수들을 대동한 채 로마의 유대인 예배당에 찾아가 유감을 표명하며 헌화했다. 또한, 역사를 바로 알도록 매년 200명의 젊은 라치오 팬들을 아우슈비츠에 견학시키는 교육 프로그램도 구단 차원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라치오와 AS로마 극성팬들은 과거부터 상대편을 폄하하는 데 반유대주의를 이용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다.
라치오 극성팬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AS로마 팬들을 모욕하기 위해 안네 프랑크의 사진을 사용하고, "AS로마는 유대인 팀", "아우슈비츠는 너희들의 고향, 오븐은 너희들의 집" 등의 원색적인 구호를 동원해왔다.
AS로마 팬들도 이에 맞서 "안네 프랑크는 라치오를 응원한다" 등의 구호를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로티토 라치오 구단 회장은 이에 대해 "대다수의 라치오 팬들은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등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며 CCTV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치오 팬들은 이달 초 사수올로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흑인선수들을 겨냥해 인종주의적 구호를 외쳐 홈 스탠드 착석이 2경기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라치오 극렬 팬클럽의 일부 구성원은 이번 일로 비난이 쇄도하자 "다른 중요한 일도 많은 데 일부 팬들의 치기에서 출발한 이런 사소한 사건에 언론 등의 과도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 놀랍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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