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소방헬기 노후…기능 떨어지고 사고 위험 노출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이제는 늙어서 긴급 환자를 구조하는 데 점점 힘이 부쳐요. 은퇴를 허락해 주세요".
1993년 9월 일본에서 태어나 올해로 25살이 됐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20대는 '돌도 씹어먹는' 한창때이지만 기계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80세 넘은 노인의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듯 잦은 고장과 수리, 부품 교체 등으로 정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어야 하는 신세랍니다.
자동차를 25년째 탄다고 생각해보세요. 이제, 제가 어떤 상태일지 살짝 짐작되나요?
29억원에 팔려 1997년부터 '전북소방헬기' 임무를 부여받고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화재 진화는 물론 인명 구조, 응급환자 긴급 이송 등 다목적용으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셈이죠.
하지만 물탱크 용량은 675ℓ로 3천ℓ에 달하는 경기도·경북도·대구시 소방헬기의 20%가량에 불과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처럼 감히 어디 비교나 되겠습니까?
이들 소방헬기의 5분의 1수준이다 보니 대형 산불이라도 나면 진화하는 데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닙니다.
한 번 휙 뿌렸을 뿐인데 물탱크는 금세 텅 비고 맙니다.
다시 물 공급을 받으러 '부리나케' 왔다 갔다 해야 하므로 종종 초동진화에 실패합니다.
소중한 나무가 타들어 가는 것을 빤히 바라볼 때면 여간 속상한 게 아닙니다.
공간이 너무 좁아 여러 명의 긴급 환자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입니다.
10인승이기는 하지만 구조 장비와 이동용 침대 등을 놓으면 최대 2명만 탑승할 수 있어서 나머지 긴급 환자들을 그대로 놓고 돌아와야 하니 얼마나 비통하고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기종인 '18인승 헬기'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특히 소형헬기(BK117B2)인 탓에 산악·해상·섬에서 갑작스러운 이상기류를 만나거나 강한 바람으로 기상이 악화할 때는 긴급 구조가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저의 주인인 조종사의 '운명'도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우니 어찌 가슴 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해 평균 160명의 인명을 구조하고 환자를 이송했습니다.
거의 이틀 걸러 한 번씩 생명을 구하는데 달려간 셈이죠.
제 역할은 여기까지이지 않을까요.
헌 헐기를 줄 테니 새 헬기를 보내주십시오.
그냥 그만둘 수는 없어서 사실 몇 년 전부터 저를 대신할 멋진 친구를 찜해뒀습니다.
물탱크가 2천ℓ인 '수리온(SURION·258억)'까지는 아니더라도 17명이 탈 수 있고 물탱크가 1천500ℓ로 저보다 배 이상 큰 중형헬기 'AW139(230억원)'가 바로 그 친구입니다.
몇 년째 계속되는 제 요청이 이뤄진다면 대형 산불로부터 아름다운 산하도 지켜내고 각종 재난과 사고로 생사를 오가는 국민도 살려내겠습니다.
송지용 전북도의회 의원은 26일 열린 제347회 임시회에서 "소방헬기를 1대만 운용하는 전국 7개 시·도 가운데 전북 소방헬기가 가장 오래돼 각종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고 소방공무원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즉각적인 교체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전북도는 "소방교부세(특수수요분야)를 지원받는 2022년께 정부와 전북도가 비용의 절반씩을 부담해 소방헬기를 교체할 계획"이라면서 "지금은 자체적으로 구매할 여력이 없는 만큼 민간 헬기 3대를 빌려 화재나 구조 등에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ich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