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학자 겐지 요시노의 신간 '커버링'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미국 할리우드 배우 찰리 신의 아버지인 마틴 신의 본명은 라몬 에스테베스다.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는 목소리 음색을 낮추는 훈련을 받았다.
두 사람은 왜 이름과 목소리를 바꿨을까. 신간 '커버링'의 저자인 겐지 요시노 미국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소수자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류 사회에 들어가고자 고유의 정체성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커버링은 약자와 소수자가 주류에 부합하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본래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는 과정'을 의미하는 용어로 제시했다.
겐지 요시노 교수는 백인이 아닌 동성애자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살지만, 끊임없이 커버링을 강요받았다고 고백한다. 미국이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소수자로서의 '표현'까지 권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완벽히 정상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누구나 주류에서 일정 부분은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즉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커버링을 한다.
커버링을 떠올리면 여성이 직장에서 임신 사실을 밝히기 어렵고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현실을 납득할 수 있다.
저자는 "동화주의라는 상냥한 언어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커버링은 민권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격"이라며 "커버링이 지속하는 한, 민권은 완성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법학자로서 그는 법이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존재는 지켜주지만, 집단과 관련된 어떤 행위는 보호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법이 소수자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결국, 커버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양대 가치인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요구한다. 인간이 '참다운 자기'를 찾아서 누리려면 무게추를 평등권에서 자유권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계몽됐다는 이 시대에, 커버링 요구가 지속되는 것은 수수께끼다. 왜 민권 혁명이 커버링 앞에서 멈췄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민음사. 368쪽. 2만2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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