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집 결합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발매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2)은 작은 것에 매료된 가수다.
학창 시절에는 '화학'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를 사로잡았고, 전업 가수가 되고부터는 노래마다 작은 꽃과 새, 풀잎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014년 결혼해 제주도로 이주한 뒤로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번역하고 동시를 썼다.
제주에 정착한 지 3년째. 작은 것을 향했던 그의 시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강남구 압구정동 안테나뮤직에서 기자들과 만난 루시드폴은 그 대답으로 정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내놨다.
앨범 소개에 앞서 그는 귤 자랑부터 했다. 루시드폴은 2014년부터 귤 농사를 짓고 있다. 2015년에는 소속사 대표인 유희열과 CJ오쇼핑에 출연해 7집 앨범과 손수 기른 귤을 팔기도 했다.
"우리 귤이 얼마 전에 무농약 인증을 받았어요. 칼슘 액상 비료는 직접 만들어서 써요. 현미식초에 패화석(굴껍데기를 이용해 만든 토양개량제)을 녹여서요. 바실러스균이 많은 청국장과 유용미생물(EM)도 써요. 사람 몸에 좋은 것 중에 나무에 좋은 게 많답니다."
8집 앨범은 이렇게 애지중지 가꾼 귤밭에서 탄생했다. 귤밭 한 켠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작사·작곡과 녹음, 믹싱을 직접 했다. 1968년형 깁슨 베이스와 1970년대 야마하 드럼을 구해 묵직한 옛 사운드를 구현했고, 노래에 다 못 담은 순간은 낡은 필름 카메라에 사진으로 남겼다.
싱글 위주 음원 시장에서 정규 앨범을, 거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집약적인 앨범을 만든 것은 "음반 이상의 무언가였으면 좋겠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요. 농사를 지어보지 않으면 매일 먹는 밥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요. 이제 저희 부부는 음식을 남기지 않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막상 소리를 어떻게 다듬는지 모르고 살았어요. 이번에는 완전하진 않아도 많이 배웠어요. 내 목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죠."
앨범 타이틀을 '모든 삶은, 작고 크다'로 지은 것 역시 농사일 덕분이라고 했다. 농사의 즐거움에 야행성 습관도 고쳤다. 밤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노동을 준비한다고 했다.
"생태화장실에 분뇨를 두면 굼벵이가 굉장히 많이 생겨요. 그 굼벵이가 나중엔 하늘소가 돼 밭으로 돌아오고…. 모르면 몰라도, 그런 게 자꾸 보이니까 살충제도 뿌릴 수 없더라고요. 작은 벌레 하나든 커다란 말 한 마리든 생명 안에는 커다란 우주가 있다는 걸 매일 피부로 느꼈어요."
타이틀곡 '안녕,'은 그의 미성과 이상순의 기타, 이진아의 피아노가 포근하게 어우러진 노래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얼굴이 조금 더 탔어요/ 거울 속 모습이 낯설 때가 있어요/ 나는 침묵이 더 편해졌어요/ 나무들과도 벌레들과도 더 친해진 것 같아'란 가사는 제주도의 햇살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농부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읽고 쓴 곡 '은하철도의 밤'은 복고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휴대전화도 2G 사양을 쓰고, 원고지에 만년필로 가사를 쓰는 루시드폴의 취향답다.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밝히지 않기로 유명한 루시드폴이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아내에 대한 애정도 듬뿍 드러냈다. 5년 전 교토에서 꽃을 연구하는 식물학도였던 아내는 이제 제주살이의 반려자다.
가장 사랑하는 것 세 가지를 꼽아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아내, 음악, 지금"을 꼽은 그는 "모든 노래의 뒤에는 아내가 있다"고 웃음 지었다.
인터뷰 말미에 루시드폴은 올해도 음반과 귤을 패키지로 내놓으려 했지만 작황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귤나무가 꽃을 피우고 주렁주렁 귤을 매다는 걸 보면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모든 생명이 굉장히 치열하게 사는구나 싶죠. 한국 농업의 미래가 밝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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