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아니라 궁물"…다문화자녀 한글 가르치는 한족 선생님

입력 2017-10-29 10:09  

"국물 아니라 궁물"…다문화자녀 한글 가르치는 한족 선생님

15년 한국생활 왕하이칭씨 우리말 유창…청주다문화센터 스타강사

"짧다는 겹받침 'ㅂ' 묵음이라 짤따로 읽어야"…국어 문법도 해박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국물을 표기대로 국∼물로 읽었는데 한국인들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더라고요. '기역' 받침이 비음화되면서 '궁물'로 발음된다는 것을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았어요"

청주 가경동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왕하이칭(王海淸·39)씨는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인보다 한국어 문법에 더 해박하다.

'왕하이칭'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왕해청'이라고 소개한 왕씨의 발음은 한국인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 왕씨는 다음 달부터 국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 자녀 2명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에 나선다. 중국어로 대화가 가능한 중국 출신 어머니를 둔 학생들이다.

이 교육은 청주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문화가족 자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따른 것인데, 왕씨는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선생님' 자리를 맡았다.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지난 4월부터 8개월까지 4개월간 이 센터가 운영한 100시간의 한글 문해력 강사 양성 과정도 수료했다.

왕씨는 다문화가정 여성이 아닌 중국 국적의 한족 여성이다. 화교 사업가인 남편을 만난 후인 2002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청주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2학년인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가 고향인 왕씨는 중국에서 한국어를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입국 초기만 해도 한국어로는 얘기할 엄두도 못냈고 한국 사람들의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왕씨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때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9년부터다.

왕씨는 "학교에서 아이에게 나눠준 가정 통신문을 보다가 충북교육청 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서 부모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문화교육지원센터는 물론 청주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왕씨의 한국어 문법 수준은 웬만한 한국인보다 낫다.

"머리가 짧다 할 때 얼핏 '짭다'로 발음이 될 것 같죠. 그런데 겹받침의 '비읍'이 묵음화 되면서 된소리로 변해요. '짤따'가 맞는 발음인데, 지금도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을 때 신경 많이 써요"

한국어 문법이 지금도 무척 어렵다는 왕씨는 "한국어를 잘 몰라 큰 애한테 동화책 한 권 읽어주지 못한 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한국어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그래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 강사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왕씨는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역시 뛰어난 한국어 실력이 밑바탕이 됐다.

다음 달부터 가르치게 될 다문화가정 자녀 2명은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생이다.

왕씨의 바람은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자신의 제자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과 차이를 느낄 수 없도록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왕씨는 "능력이 부족해 아이들을 잘 가르칠지 걱정되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다문화가정에 돕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k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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