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 타고 남미로] (17) "모범 대신 모험" 파라과이 보건강화사업 PM 강양희 박사

입력 2017-10-29 09:30  

[ODA 타고 남미로] (17) "모범 대신 모험" 파라과이 보건강화사업 PM 강양희 박사

교수직 던지고 7년 만에 다시 현장으로…"국제경험 쌓아 북한서 ODA 사업 펼치는 게 꿈"



(림삐오<파라과이>=연합뉴스) 정규득 기자 =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는 파라과이의 보건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수도 아순시온의 위성도시인 림삐오의 인구가 불과 수년 만에 8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보건지표가 크게 악화했다. 이에 KOICA는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보건의료체계 강화사업(2016∼2022년, 사업비 1천390만 달러)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 양질의 1차 의료 제공 및 지역의료 전달 체계 구축 ▲고혈압과 당뇨 등 비전염성 질환의 예방과 치료 ▲ 의료기관과 보건복지부 인적역량 강화 ▲지역 보건정부시스템 강화 및 개선 ▲지역주민 참여 강화 ▲성과관리 평가시스템 구축 등이다.

강양희(51) 박사는 이 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PM)로, 프로그램 기획과 모니터링, 직원 관리 등 사업 전반을 관할한다.

"파라과이는 2008년에 보건소 개념을 처음 도입해 1차 의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합니다. 보건소에서 1차로 진료를 받고 질병이 있으면 2, 3차로 병원으로 간다는 그런 인식 자체가 약한 것이죠. 이곳을 샘플로 삼아 보건의료체계를 형성해 주고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1차 의료 즉 보건소의 역할과 기능을 바르게 정립해 주는 게 이 사업의 목표입니다."

현재 림삐오에는 7개의 보건소가 가동되고 있지만 모두 수십 년 된 건물로 너무 낡은 데다 인근 지역 주민들도 몰리다 보니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KOICA는 이곳에 13개의 보건소를 새로 지어준다. 기존 보건소는 3개를 리모델링하고 4개는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다.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보건소는 총 20개로 늘어난다.

"베드타운의 기능으로 인해 인구는 급증하는데 병원은 KOICA가 지은 모자병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병원 확장공사와 함께 지역 전체를 건강한 도시로 구현하기 위해 지역주민 참여 강화 프로그램, 즉 건강한 자연환경 조성을 위한 지역개발 사업도 진행합니다."

부산 출신인 강 박사는 고신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석사(모성간호학), 박사(아동간호학)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통상적인 병원 간호사의 길 대신 장애인 시설인 거제도 애강원에서 1년간 간호사 겸 보육교사 생활을 했다. 이후 부산 회동초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지내다 조산사 면허를 따기 위해 일신기독병원에서 1년을 수련하고 10년간 수간호사로 근무했다. 당시 1천 건 이상의 분만을 맡았다.

고신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연구강사와 연구원으로도 일하던 그는 교수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세인트 메리 병원의 아동 병동에서 4년간 책임간호사로 일했다. 이 병원은 만성적이거나 선천성 유전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장기 입원해 치료받는 곳이다.

"제게는 학교가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박사후과정으로 취약여성과 아동에 대해 공부하려고 미국에 갔는데 내가 선택한 것이 호스피스 과정이어서 그냥 포기하고 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4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돌아간 그는 모교에서 다시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그래서 '도망치다시피' 선택한 것이 KOICA 봉사단원이었다. 2007년 파라과이에 건너온 강 박사는 까삐야따 지역에서 모자병원을 건립하는 일을 했다. 까삐야따와 림삐오, 빌야 엘리사 등 3곳에 모자병원이 KOICA 사업으로 지어졌다.


2년간의 봉사단원 생활을 마치고 2009년 귀국한 강 박사는 이번에는 모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간호학과를 설립해 교수(학부장)를 맡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뒤 그는 '모험'을 찾아 2017년 1월 19일 다시 파라과이 땅을 밟았다.

"대학에 오래 있다 보니까 제 사고가 틀에 갇히게 되더군요. 학생들에게 늘 '도전하라', '새 길을 개척하라'고 주문하면서 스스로는 직업에 안주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50살의 나이에도 실제로 직접 도전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죠. 제 삶의 모토가 모범적인 삶보다 모험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강 박사는 ODA가 당연히 국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재국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이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현지인들과 부대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 기업이나 인력의 진출이 용이해진다고 강조했다.

"교수로 일할 때 학생들에게 좁은 데서 각축하지 말고 더 넓은 경기장으로 나가라고 말했지요. 우리 청년들이 더욱 넓은 곳에서 마음껏 뛰면서 역량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이런 곳에서 부딪히다 보면 부서짐을 통해서 그 사이로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정서로 연결되고 인간에 대한 열린 마음만 있으면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강 박사는 KOICA 봉사단원과 PM 생활을 기반으로 앞으로 유엔이나 유니세프 등에서 국제기구 경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최종 목표는 북한에서 ODA 사업을 펼쳐보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미국에 있을 때 국제기구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언어가 되고 미국 간호사와 조산사 자격이 있음에도 국제경험이 없다는 이유였죠. PM 생활이 끝나면 다시 국제기구에 지원할 겁니다. 그리고 북한이 개방되면 그곳에서 ODA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언어와 정서, 문화를 고려할 때 한국인인 우리가 하는 게 좋겠지요. 지금은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wolf8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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