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몰라도, 아파도 도와드려요"…협동조합·다문화학교 운영하며 정착 도와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역사책에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나온 고려인 동포들이 불법체류자로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충격이었죠."
중앙아시아를 떠돌던 고려인 동포들의 국내 정착을 도운 '대부' 이천영 목사는 2002년 고려인 신조야(62·여)씨를 만나면서 고려인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목사와 기독교인 활동가들이 운영하던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찾은 신씨는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도움을 청했다.
1998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와 그 직계비속'으로 대상을 제한했다가 2004년에서야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도 포함하도록 개정됐다.
한국에 체류 중인 고려인들이 어려운 삶을 엿본 이 목사는 신씨를 설득해 함께 고려인 동포들을 돕자고 팔을 걷어붙였다.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아파도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모르는 고려인들을 도우며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한국어 교육도 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고려인들이 늘어나자 이 목사는 신씨와 함께 고려인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주택가에 상가와 작은 방이 딸린 1층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밥을 해먹고 한국어 공부를 함께했다.
취업·출입국 서류 지원부터 병원에 갈 때나 집을 구하는 일까지 고려인들의 정착을 도왔다.
월 35만원의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 때가 많았지만, 새벽부터 공장에 나가는 고려인 엄마들을 위해 아이를 봐주고 가방 하나 들고 광주를 찾아온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목사가 사재를 털고 고려인들이 매월 1만원, 5천원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아 센터를 운영했고 농협이나 지역 공공기관들도 쌀이나 부식 지원을 했다.
이 사이 이 목사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새날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다.
2004년 한 외국인 근로자가 두고 가버린 7살짜리 아이를 돌보던 것을 시작으로 다문화가정 아이 수용은 물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교육시설이 필요하다고 여긴 이 목사는 학생 2명과 함께 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개교 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러시아 출신 학생, 고려인과 중국 동포 자녀들이 모여들었다.
지역 언론인, 교육계 종사자, 정치인들이 뜻을 함께하며 2011년 6월 학력인정학교 인가를 받았고 2013년 초 첫 대학입학생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고려인 지원을 본격화하기 위해 설립한 고려인마을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등을 갖춘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운영은 물론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내 창업 활동도 지원한다.
현재 광주에 등록된 고려인은 2천700여명이나 실제 4천여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사는 "새날학교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간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하고 학교 세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타국에서 강제 이주의 아픔을 겪는 고려인 동포들이 할아버지 나라에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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