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인간…오원배 그림이 묻는 '인간다움'

입력 2017-10-30 15:50   수정 2017-10-30 17:06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인간…오원배 그림이 묻는 '인간다움'

OCI미술관서 5년 만에 개인전…32m 대작 등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아랫도리만 대충 걸친 사람들이 너덧 명씩 무리 지어 있다. 양손을 머리에 올린 무리도 있고,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선 이들도 있다. 하나같이 뻣뻣하게 굳은 모습에다 한 방향만을 바라본다.

맞은편 거대한 검은 캔버스 속 황동색 인조인간이 춤을 추는 듯 몸체를 움직이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모습의 인간과 인조인간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곳은 오원배 작가 개인전 개막을 앞둔 서울 종로구 수송동 OCI 미술관이다.

동국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 개인전은 금호미술관 이후 5년 만이다.

작가는 사회 체제와 구조로부터 소외된 인간을 주로 다뤄왔다.

지난해 3월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8단과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고, 같은달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설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OCI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던 그를 자극했다.

"기계는 어디까지나 인간 생산성을 높이거나 삶의 편리함을 높인다고 생각했는데 인간 감성도 기계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대신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계가 전혀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감정과 감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계가 대신한다는 사실에 놀랐죠."






30일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32m 길이의 종이를 채운 인간 군상을 바라보며 "잉여노동으로 불안을 느끼는 인간이 기계가 하는 동작,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말했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파이프와 가스관, 담벼락이 인간을 더 옥죄는 듯하지만, 작가는 몇 마리 나비를 그려 넣어 숨통을 조금 틔웠다.

OCI미술관은 "집단화한 인간의 통제된 신체와 인조인간의 자율성이 강한 대비를 보여주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다움은 무엇인가를 묻는다"고 설명했다.

2층에서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도시의 풍경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압구정 고가 계단, 서대문 형무소, 광화문 뒷골목 등을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다. 1층 전시장의 기계·인간 작업들보다는 덜 낯설지만, 삭막한 느낌을 준다. 인간 소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배경을 암시하는 작품이라는 것이 미술관 설명이다.

한층 더 올라서면 1, 2층을 휘감았던 암울한 기운이 일거에 해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구슬, 부처, 산, 피라미드 등 작가가 일상에서 꾸준히 즉흥적으로 그려온 드로잉 37점이 내걸렸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문의 ☎ 02-734-0440.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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