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 박슬기 "금단의 사랑 택하는 주인공에 연민 느껴"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글쎄요. '안나 카레니나'에서처럼 인생을 뒤바꿔버릴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남편에겐 이번 작품은 보러 오지 말라고 했어요. 하하."
11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신작 '안나 카레니나'에서 금단의 사랑을 택하는 주인공을 연기하게 된 수석 무용수 박슬기(31)는 최근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저라면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런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는 지난 8월 결혼한 '3개월차 새댁'이다.
그는 2013년 자신의 재활 치료를 돕던 재활 트레이너와 연인으로 발전,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2013년 연습 도중 발등이 꺾여 뼈를 다치는 바람에 2~3달 정도 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 만나게 됐어요. 저희 둘 다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하더라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화 통화를 하며 친해졌어요. 결혼하니 더 좋은 것 같아요.(웃음) 훈련으로 몸이 안 좋을 때마다 관리도 직접 해주고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요.(웃음)"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을 시기지만, 그는 "사랑을 갈구하고 갈망한다는 점에서 안나가 감정적으로 이해가 된다"며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원작은 1천200쪽 분량의 톨스토이 동명 소설. 19세기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가 안정적인 가정 대신 뒤 늦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 '브론스키'를 택하며 사회적으로 파멸을 맞는 이야기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인간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통찰력을 담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이 명작 소설을 발레 무대로 옮겼다. 2014년 취리히오페라극장 초연된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선을 잘 살린 모던한 안무와 독창적인 군무, 19세기 러시아 상류 사회를 재현한 화려한 의상들로 호평받았다.
박슬기는 이 작품의 특징에 대해 "그 어떤 작품보다 연극적"이라고 답했다.
"무용수들이 디테일을 잘 살려야 하는 작품이에요. 소설을 읽고 소피 마르소 주연의 동명 영화(1997)도 보면서 작품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슈푹도 눈빛이나 눈동자를 굴리는 부분까지 지시할 정도로 감정 표현과 상황 묘사를 자세히 해주고 있어요."
늘 '표현력 좋은 무용수', '연기가 되는 발레리나'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는 이 작품에서도 "대사를 하듯 춤을 출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어떤 동작을 할 때 늘 속으로 저만의 대사를 외워요. '브론스키'를 향한 춤을 출 때도 속으로는 '가지마, 난 너만 사랑해'와 같은 식의 대사를 몸으로 읊는 식이죠. 이번 작품이 현실적인 연기가 많이 필요한 작품이니 더 역할에 빠져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007년 국립발레단 준단원으로 입단해 2012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한 그는 어느덧 국립발레단 주요 작품 주인공에서 빠지지 않는 '간판 발레리나'가 됐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올해 '최우수 여성 무용수(Female Dancer)'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저는 소위 '발레 영재' 출신도 아녔고,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무용수도 아녜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계단을 밟으며 꾸준히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제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은 기회가 열렸고요. 발레리나로서의 꿈도 가능한 한 오래 추고 싶다는 것뿐이에요. 제가 아름다운 한 끝까지 무대 위에서 춤추고 싶어요."
이번 공연에서 '안나' 역은 박슬기와 함께 김리회, 한나래가 번갈아 연기한다. (박슬기는 3일과 5일 무대 캐스팅) 5천~5만원. ☎02-587-6181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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