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열흘 앞두고 정상회담 발표…사드배치 공식화 1년 4개월 만에 관계복원 수순
靑 "입장은 입장, 현실은 현실…사드 문제 끝낸다는 메시지"
韓 경제회복·中 習2기 주변국 우호관계 절실…정상회담으로 정상화 가속
내달 '한미→미중→한중' 연쇄 정상회담…북핵 해결 환경 조성 평가
中, 사드보복에 대한 유감표명 없어…'MD·한미일 군사협력 이슈 과실만 챙겨' 지적도
北 도발 지속하는 한 갈등 잠재…文대통령, 대북 영향력 中 압박할 듯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10∼11일 베트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가 해빙 모드로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은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의 회동 이후 4개월여 만이다. 그 사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숱한 도발에도 전화 통화마저 사실상 거부했던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양국 관계를 경색시켰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뇌관'이 제거된 데 따른 것이다.
양국의 최대 갈등 요인 해소를 계기로 두 정상이 만나기로 함에 따라 작년 7월 8일 한국과 미국의 한반도 사드배치 결정 공식 발표 이후 1년 4개월 가까이 갈등으로 점철됐던 양국 관계 전반에 훈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중 양국의 '사드 합의'가 정상회담 개최 불과 10여일 전에 발표된 것은 '사드 파고'를 넘어 양국의 교류협력 강화를 통한 정상적인 관계 복원이 시급하다는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현실 인식이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기자들과 만나 "사드와 관련해서는 양측 간 입장을 있는 대로 표명하고 그 순간 '봉인'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더는 사드 문제를 양국 모두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드 문제를 수면 아래로 잠복시킨 배경에는 한중 양국의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으로서는 24일 폐막한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 2기 집권 체제'를 공고히 다졌고, 이를 토대로 주변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입장에 처했다.
한국 역시 사드로 인한 경제·문화적 피해 상황 타개가 중요한 데다, 새 정부로서는 이전 정부에서 비롯된 갈등 요인을 하루속히 해소할 필요성이 대두했다.
양국이 이날 동시 발표한 협의 결과에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그대로 담으면서도 '교류협력 강화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공감'한다고 밝힌 것은 사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다르더라도 더는 이 문제가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입장은 입장이고 현실은 현실로, 입장에 대해서는 양국이 말할 내용을 밝히고 그다음에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자는 것을 양국이 공유했다"며 "사드 문제는 이 선에서 끝낸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양국이 더는 사드 문제를 재론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문 대통령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의제에 오르지 않을 전망이다.
대신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뒤틀려온 경제·문화 분야 교류의 정상화를 통해 양국 관계를 급속히 발전시킨다는 데 의견을 모을 가능성이 크다.
사드 합의에 따라 다음 달 '한미→미중→한중'으로 줄줄이 예고된 정상회담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적절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내달초 서울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양국 의 공통된 북핵 해법을 들고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머리를 맞댈 예정이며, 앞선 두 정상회담을 토대로 APEC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대북 영향력 행사에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중국을 견인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국이 사실상의 사드 보복 조치로 우리 경제에 작지 않은 타격을 줬음에도 이에 대한 아무런 '유감'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합의에서 우리 측이 양보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중국은 합의문에서 사드를 빌미로 ▲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하지 않고 ▲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으며 ▲ 한미일 군사협력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삼불(三不)' 정책을 강조하는 등 자국의 핵심 이익만 지키려 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MD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이지만 사실상 중국이 바라는 답변을 재확인한 셈이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워싱턴D.C.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미일)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기존의 양자 및 3자 메커니즘을 활용함으로써 이런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한·중 합의가 기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특히 미국이 이번 합의를 마뜩지 않게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번 합의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동맹 간의 불필요한 오해나 마찰이 없도록 협의 진행 과정에서 주의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사드가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를 미국이 중국에 했다. 미국의 역할이 컸다"며 "이번 합의에 대해 백악관에서도 '굉장히 좋은 결과가 도출됐다'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코멘트도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이번 사드 합의를 '봉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봉합'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언제든지 같은 사안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사드배치 명분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도발의 지속성과 강도에 따라 사드 추가 배치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핵추진 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수시 배치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이를 문제 삼아 제2의 사드 갈등이 재연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고려하면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정상회담을 비롯한 각종 채널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키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압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그나마 대북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는 중국에 이런 역할을 한층 더 강조하는 데 진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honeyb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