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기리며 헌화까지…반체제인사들 "현 정권 정치탄압은?"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정적들을 공공연하게 탄압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구소련 시절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을 건립해 반대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년에 걸쳐 제작된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 '슬픔의 벽'(Wall of Sorrow)이 이날 저녁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됐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제막식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대는 탄압의 비극과 그것을 야기한 원인을 기억해야 한다"며 그러한 기억이 "재발을 막는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연설하고 헌화했다.
모스크바 중심부의 사거리에 있는 옛 주차장 부지에 들어선 조형물은 길이 약 30m, 높이 6m 규모의 벽에 정치탄압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새겨진 형상이다.
조형물 건립을 위해 모스크바 시가 전체 비용 600만달러(약 67억3천만원)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고 기업과 개인이 기부한 80만달러(약 9억원)도 보탰다.
러시아에서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위한 조형물이 건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대통령령에 의해 건립된 것은 처음이다.
구소련에서는 '대공포 시대'로 불린 스탈린 치하 1937년부터 2년 사이에 75만여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숫자는 '굴라그'(강제노동수용소)에서 희생된 인원까지 포함하면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형물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해온 굴라그박물관의 로만 로마노프 관장은 "대통령령에 의해 조형물이 건립되고 일반 시민이 모금에 참여해 지원했다는 점에서 청산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푸틴 정권에 저항해온 반정부 인사들은 현 정부가 자행하는 정치탄압을 숨기려는 얄팍한 눈가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 반체제인사 40여명은 페이스북에 공개한 성명에서 "현 정부는 조형물 건립을 지원함으로써 정치탄압이 오래된 옛일인 것처럼 포장하려 한다"며 "우리는 기억되고 존경받아야 할 구소련 정권의 희생자들 못지않게 러시아 내 현 정치범들도 우리의 도움과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청원자 중에는 구소련 시대의 주요 반체제인사 알렉산드르 포드라비네크를 비롯해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해 붉은광장에서 시위를 주동했던 파벨 리트비노프,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 내 소수민족인 타타르인 공동체의 무스타파 제밀례프 전 의장 등이 포함됐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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