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8명 중 5명 낙태죄 규정 "손질 필요"…법 개정 여부와 맞물려 주목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청와대가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조만간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한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이와 별도로 낙태죄 규정의 위헌여부를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월 8일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해 심리 중이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270조 1항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것은 2012년 8월 '동의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후 5년 만이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며 처벌 규정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이강국 헌재소장과 이동흡·목영준·송두환 헌법재판관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 한 자리가 공석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심리에 참여한 8명의 재판관 중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낼 정도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위헌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결정이 내려진 사건이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이번 사건에서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두고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낙태죄 찬반 논쟁은 더욱 첨예해진 상황이다.
합헌결정 당시 심리에 참여했던 8명의 재판관은 모두 임기가 종료됐고, 새로운 재판관들이 심리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존 합헌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한다.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인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제외한 8명의 재판관 중 5명이 낙태죄와 관련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진성 재판관은 2012년 인사청문회에서 "피임과 낙태를 선택함으로써 불가피한 임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이 태아의 생명권에 비하여 결코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도 지난 9월 인사청문회에서 "예외적으로 임신 초기 단계고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와 같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낙태죄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강일원·안창호·김창종 재판관도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
반면 서기석·조용호·이선애 재판관은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별다른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헌재는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정식으로 임명돼 재판관 '9인 체제'가 갖춰지는 대로 낙태죄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새 재판관이 사건 자료 등을 검토하는 작업을 마치면 곧바로 재판관 평의 절차에 돌입해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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