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국민 삶 무너뜨려…국가가 제 역할 다해야"
사람중심 경제·적폐청산·한반도 평화정착 3대 기둥
'국민' 70회·'경제' 39회·'국가' 25회 언급…'촛불'·'개혁'·'적폐청산' 빈도는 낮아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새해 예산안 통과를 위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가 역할론'을 최대 화두로 내걸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왜곡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놓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강조점이다.
특히 저성장과 실업이 고착화하고 중산층이 무너진 현실에서 그 해결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겠다는 게 연설의 핵심 포인트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20년 전 김영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인 1997년 11월 21일을 회고하며 "국민은 피눈물 나는 세월을 견디고 버텨 위기를 극복해냈고 국가 경제는 더 크게 성장했지만, 외환위기가 바꿔놓은 사회경제구조는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모순의 상당 부분이 IMF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비롯됐다는 문제의식을 내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IMF 위기 때 희생한 국민이 오히려 고통을 겪고 있다면 국민을 위한 경제 구조로 바꿔줘야 한다"며 "이번 예산안에는 이런 문제의식과 정부의 기조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는 재정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이른바 '큰 정부'의 기조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탄생의 결정적 동력이 된 '촛불혁명'은 바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광장과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며 "보다 민주적인 나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국민이 요구한 새 정부의 책무다. 이 책무를 다하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여긴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현시기 국가의 역할을 경제·사회·안보 등 3대 분야로 나누고 ▲사람중심 경제 ▲적폐청산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국정목표를 다시 한 번 제시했다.
먼저 문 대통령은 "경제를 새롭게 하겠다"며 새 정부의 경제철학인 '사람중심 경제'에 최우선 강조점을 뒀다. IMF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벌과 대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에서 벗어나 성장의 과실을 각 경제주체에게 골고루 분배함으로써 저성장과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특히 '사람중심 경제'를 뒷받침하는 '네 바퀴'인 일자리 성장·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7.1% 증가한 수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사회 전반에 온존하고 있는 불공정과 특권을 척결하기 위한 '적폐청산'을 다음 화두로 내걸었다. 특히 과거 정부에서 정치개입을 비롯한 각종 부조리가 드러난 국가정보원에 대한 개혁 의지를 강조하며 국회 차원의 입법 지원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 개혁의 의지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하면 "대통령인 나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되겠다"며 조속한 입법을 당부했다.
또 권력기관 채용비리 근절 등 사회 전반의 부정과 부패, 불공정을 뿌리 뽑고 사회혁신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애초 시정연설문에 사회혁신이나 국가혁신까지도 확대해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며 "예산안 시정연설인 만큼 경제패러다임 전환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사회혁신과 국가혁신까지도 취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는 우리 국민이 살아갈 삶의 공간"이라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 ▲한반도 비핵화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등 5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 앞에서는 정부와 국회, 여와 야가 따로일 수 없다"며 "한반도 정책에서만큼은 초당적인 협조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연설이 전반적으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 탓에 문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70번이나 거론했고, '국가'와 '나라'도 각각 25차례, 14차례 입에 올렸다. 또 '경제'를 39차례 언급하며 사람중심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의 하나인 '일자리'는 13번 거론됐고, 북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한반도'(13번) '안전'(11번) '안보'(6번) 등의 단어도 많이 오르내렸다. 다만 새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촛불'(2번)과 '개혁'(3번)·'적폐청산'(1번)은 상대적으로 언급 빈도가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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