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갈등·사이비 종교 파헤친 소설 '아홉번째 파도'

입력 2017-11-02 08:30   수정 2017-11-02 08:39

원전 갈등·사이비 종교 파헤친 소설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작가 첫 장편…묵직한 사회문제 밀도 높게 다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핵발전소를 둘러싼 찬반 갈등과 사이비 종교 집단의 암약, 하도급 비정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 등 여러 묵직한 사회문제를 밀도 높게 다룬 소설이 나왔다.

젊은 작가 최은미의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문학동네)는 근래 우리 문학계에서 드물게 나온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척주'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을 책으로 묶었다.

이 소설은 강원도의 소도시 '척주'를 배경으로 핵발전소 유치를 앞세워 정치력을 이어가려는 시장 일당과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지역경제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온갖 불법행위를 일삼는 대기업과 은밀하게 이와 유착해 사람들의 삶을 좀먹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폐해까지 소설로 형상화했다.

척주에서 나고 자랐으나 아버지를 여읜 뒤 떠나 다시 이곳 보건소 공무원으로 내려온 '송인화', 역시 척주 출신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윤태진', 보건소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약대 재학생 '서상화'.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척주에서는 수십 년째 지역경제를 주름잡아온 시멘트 회사 사장 출신 시장 '오병규'가 핵발전소를 유치했으나,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이 일어 시장을 끌어내리자는 주민소환 투표가 발의된다. 지역사회 토착세력들과의 끈끈한 인맥과 금권을 바탕으로 막강한 정치력을 발휘해온 시장은 사조직과 깡패들을 동원해 시민들의 투표를 방해한다.

송인화는 시청 소속인 보건소 공무원 신분으로 주민소환 투표 발의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그의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교집단 '약왕성도회'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윤태진은 핵발전소를 둘러싼 지역 여론의 분열 속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무능한 국회의원을 비롯해 각자의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인간 군상에 환멸을 느낀다.

서상화의 아버지는 시멘트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업무 환경과 부당한 처우에 반발해 노조 활동을 했다가 사측의 고소와 손배소 등 탄압을 당하고, 서상화는 아버지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약국 아르바이트 등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시멘트 석회 광산에서 일하며 진폐증 등 병을 얻은 사람들이 잠시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 성분의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온 삶이 슬프게 그려진다. 또 불법행위와 노동 착취로 이익을 부풀려온 기업가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다시 주민들을 기만하고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정-경 유착의 세태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힘없는 사람들의 이성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약물과 사이비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가는 실제로 2012년 강원도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시장 주민소환 투표를 모티프로 했다고 말한다.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주민소환 투표와 시멘트 회사, 진폐증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작가가 현실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꼼꼼하게 취재한 결과물로 보인다. 전문 영역인 의약품과 보건소에 관한 치밀한 묘사도 흥미롭다.

다만, 여러 갈래의 굵직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녹이면서 다소 산만해지는 감이 있다. 한 가지 주제를 좀 더 깊게 파고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72쪽. 1만3천800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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