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과 싸우며 안구마우스로 쓴 치열한 삶의 기록

입력 2017-11-02 11:45  

루게릭병과 싸우며 안구마우스로 쓴 치열한 삶의 기록

7년째 투병 중인 소설가 정태규 신간 '당신은 모를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병상에 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숨 쉬는 것조차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소설 창작과 글쓰기를 이어가는 작가가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낸 소설가 정태규(59)가 병마와 싸우며 쓴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묶어 '당신은 모를 것이다'(마음서재)를 출간했다.

루게릭병으로 7년째 투병 중인 작가는 자신에게 소설 쓰기가 지닌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다.

"루게릭병이 내 몸에서 근육을 모두 앗아가도 절대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이다. 신이 내게 정신과 육체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정신을 선택할 것이다. 내 정신이 곧 내 소설이고, 소설을 쓸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 소설도 그런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작품이 세상 누군가의 영혼에 힘이 되고, 영혼의 근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본문 69쪽)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는 병으로 많이 알려진 루게릭병은 공식 병명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으로, 근육 운동을 조절하는 뇌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점차 사라지는 병이다. 소설을 쓰면서 부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작가는 2011년 어느날 아침 손가락에 힘이 없어 와이셔츠 단추를 끼우지 못하는 일을 겪었고, 1년여 만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투병 초기부터 "몸이 옥죄어오는 유배지 같은 이 황량한 들판에서 난 오래오래 외로울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골방에 틀어박혀 코피가 날 때까지 소설만 쓰는 전업 작가가 오랜 꿈이었기에 투병 생활을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손을 쓸 수 없게 된 뒤 굳어가는 혀를 움직여 구술하면 아내가 이를 받아적는 식으로 글을 쓰지만, 곧 이마저도 불가능해지자 그는 괴로워한다. 그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이 '안구 마우스'다. 안구의 움직임과 눈 깜빡임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입력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장비는 그가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줬다. 고가여서 사기 어려운 이 장비를 부산지역 문인들이 '아이스 버킷' 캠페인으로 기금을 마련해 그에게 선물했다.

이후 그는 "새롭게 세상과 조우"했고 음악, 영화, 카톡, 쇼핑, 바둑까지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어 지인의 권유로 SNS인 페이스북을 하게 되면서 소설 작품을 올리고 독자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번에 낸 책에는 그동안 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눈을 깜빡이며 써내려간 치열한 삶의 기록과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비원', '갈증', 발병 초기에 쓴 산문들이 묶였다.

그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소소한 일상에 관해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카페 구석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는 것,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공을 주워 다시 던져주는 것, 거실 천장의 전구를 가는 것,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는 것… 그토록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그는 또 "이 책이 ALS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조그만 위로와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276쪽. 1만4천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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