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김대섭 "그저 그런 선수로 계속 뛰고 싶진 않아"

입력 2017-11-02 15:37  

은퇴하는 김대섭 "그저 그런 선수로 계속 뛰고 싶진 않아"

'레슨 프로'로 제2의 인생…"이미 성은정 등 제자 4명 가르쳐"




(여주=연합뉴스) 권훈 기자= "20등, 30등 하는 선수로 투어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골프 실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제2의 인생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에서 김대섭(36)은 특별한 이름이다.

그는 '소년 챔피언'이나 '한국오픈의 사나이'로 불린다. 1998년 서라벌고교 2학년생 김대섭은 한국 골프의 최고 권위의 메이저급 대회 한국오픈을 제패했다. 한국오픈 시상대에 오른 김대섭은 여드름이 잔뜩 한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그래서 '소년 챔피언'으로 오래도록 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성균관대학에 다니던 2001년 그는 또 한 번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 역시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2012년 김대섭은 다시 한 번 한국오픈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한국오픈의 사나이'가 됐다.

2002년 프로 선수가 된 김대섭은 신인으로 메이저급 대회인 한국프로골프(KPGA)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2005년 또 한 번 KPGA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유독 큰 대회에서 강했다.

김대섭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 2일부터 경기도 여주 솔모로 컨트리클럽(파70)에서 나흘 동안 열리는 카이도 투어챔피언십은 김대섭이 투어 선수로 마지막으로 나서는 대회다.

1라운드를 마친 김대섭을 만났다.

먼저 왜 이렇게 빨리,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했냐고 물었다. 그는 이제 서른다섯 살이고, 투어에서 15년밖에 뛰지 않았다. 아마추어 때 2승을 빼면 8승을 올렸다. 10승을 채우고 싶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건방진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열심히 하면 20등이나 30등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20등, 30등 하는 선수로 투어를 계속하긴 싫었다. 요즘 대회에 나가면 후배들보다 거리도 너무 모자라고 내 골프로는 버티기 힘들더라"

그는 은퇴를 갑자기 결정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생각했다. 주변 분들과 많이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다. 아내와 부모님이 좀 서운하다고 하셨지만 다 이해했다."

김대섭이 이렇게 빨리 은퇴하게 된 데는 '제2의 인생'을 하루빨리 시작하자는 생각도 큰 몫을 했다.

"3년 전부터 골프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레슨이 재미도 있고 재능도 있는 것 같다. 이걸 하면 잘 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투어 생활을 하면서 선수를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런 투어 프로 선수도 많다. 하지만 난 하나를 하면 그것만 해야지 두 가지 일은 못 한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선수 생활을 접기로 했다"

김대섭은 2개월 전에 경기도 용인 남부 컨트리클럽 연습장에 아카데미를 이미 열었다. 아직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이미 제자 4명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와 US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성은정(18)이 두 달 전부터 김대섭에게 배우고 있다.

"은정이는 제가 슬럼프에 허덕일 때 가졌던 느낌을 공유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은정이가 레슨 프로로서 시험지 같은 존재가 됐다."

제2의 인생으로 레슨 프로의 길을 선택한 김대섭의 꿈은 '좋은 선수'를 키우는 것이다.

"정말 좋은 선수를 키워보고 싶다. 제자가 최고의 선수가 됐다고 해서 다 내 덕은 아니겠지만 최고가 되는데 내가 한몫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다"

투어 선수 생활을 15년 만에 마감하는 게 아쉽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김대섭은 후회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얘기 하면 안되지만…솔직히 요즘은 대회에 나가도 즐겁지가 않았다. 예민한 성격이다 보니 골프가 잘 안 되면 몹시 힘들었다"

그는 그래도 "선수로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그는 "프로가 되면서 목표는 한국오픈 우승 하나 뿐이었다. 2012년 한국오픈 우승으로 프로 선수로서 내 목표는 달성했다"고 털어놨다.

2012년 한국오픈 우승 이후 그는 우승 트로피를 하나도 보태지 못했다.

"그 대회 3라운드를 마치고 '우승하면 다시는 공이 안 맞아도 상관않을테니 우승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만큼 간절했다. 그런데 기도가 통했는지 우승도 했고 다시는 우승도 못했다. 하하"

김대섭은 고교 2학년 때 한국오픈 우승만큼 드라마틱한 삶은 살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를 반납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이 결정은 엄청난 논란이 일으켰다. 돈에 눈이 멀어 태극마크를 박찼다는 비난도 받았다.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회를 버린 건 미래를 봐서도 잘못된 선택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사실은 당시에 집안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직장을 포기하고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가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이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안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대섭은 2006년 또 한번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갑자기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우승은 커녕 컷 통과에 급급했다. 2006년엔 상금랭킹 26위, 이듬해에는 48위로 떨어졌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했다.

"2005년 결혼하고 나서 슬럼프에 빠지니까 너무 빨리 결혼해서 그렇다고들 수군댔다. 잘 쳤다면 그런 얘기가 안 나왔을 텐데 아내한테 미안했다. 드라이버가 입스가 왔다.드라이버를 치려면 볼이 2개로 보였다. 나중엔 연습은 커녕 골프채를 잡지도 않았다. 조기 축구하러 다녔다. 그런데 5개월 정도 아예 골프채를 놨더니 연습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공만 맞히자며 스윙을 더 줄여서 치다가 겨우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거리를 늘리려고 스윙을 바꾼 게 독약이 됐다고 그는 밝혔다.

"한창 잘 나갈 때였다. 주변에서 10야드에서 20야드만 거리가 늘면 천하무적이겠다고 하더라. 거리 욕심에 스윙 바꿨더니 죽도 밥도 안됐다."

그는 만 서른 살을 몇 달 앞두고 입대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던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집에 두고 입대했다.

"군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군에서는 절제된 생활을 해야지 않나. 그동안 프로 선수로 살면서 건방끼도 들었고 해이해진 면도 있었다. 10살 어린 친구들과 동료가 됐는데 불량 청소년 출신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친구들한테도 배운 게 많았다. 몸도 건강해졌다. 늦은 나이에 갔던 게 그런 걸 많이 배운 계기였다. 높은 분들 레슨 같은 걸 안 했던 것도 다행이었다. 풀만 뽑고 왔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차지한 2012년 한국오픈 우승 얘기를 또 꺼냈다.

"2013년 한국오픈 우승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2012년 한국오픈 우승 트로피다"

그는 "골프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그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행복했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선수다. 더 많은 우승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내 그릇이다. 아쉬울 때 그만두는 것도 행운"이라고 거듭 힘줘 말했다.

다만 일본 진출이 번번이 좌절된 건 내내 아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후배들에게 해줄 말을 묻자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결국 그렇게 못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 무대에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는 그는 "스윙 훈련보다는 쇼트게임 연습에 좀 더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김대섭은 큰아들 단(12)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골프 선수로 키울 생각이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90대 타수를 적어낸다고 한다. 둘째 결(9)도 아직 서툴지만, 골프를 한다. 아내, 두 아들과 종종 골프를 함께 할 때가 행복하다고 그는 밝혔다.

1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적어낸 김대섭은 "이러다 은퇴를 번복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그럴 리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내일 2라운드 끝나고 은퇴식을 하는데 가족이 모두 온다. 창피한 경기를 보이면 안 되니까 사실 연습을 좀 했다. 하하"




kh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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