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놀 친구 적지만 미래 꿈 키우기 도시학교 부럽지 않아"
"학교가 없으면 마을도 점점 살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
[※편집자 주 = 인구 감소 위기의 여파는 백년지대계인 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출산율 감소로 학령인구는 줄고, 학생이 없어진 학교는 해마다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농어촌학교 감소세가 더 가파릅니다. 교육 당국은 고육지책으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뜨겁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 속에 시골학교, 오지 학교의 열악한 교육여건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입니다. 연합뉴스는 산간오지 학생, 섬마을 선생님의 일상을 통해 농어촌교육 현장의 실상을 살펴보고 특별법 제정 추진 등 도농 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제언을 담은 기사 4편을 송고합니다.]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우리도 집 근처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학생 수가 줄어들더라도 학교 문을 닫지 말아 주세요."
내 이름은 이하연(11·여).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녹전초등학교 원천분교 4학년이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13명뿐이다. 같은 학년인 4학년이 5명으로 가장 많고 3학년은 1명도 없다. 6학년 오빠가 1명이고 5학년 2명, 2학년 4명, 1학년 1명이다.
학교는 안동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이상 걸리는 시골에 있다. 녹전면 소재지에서도 자동차로 10분 이상 걸린다. 학교 운동장 바로 옆은 과수원이거나 밭이다. 이런 이유로 대도시 사람들은 우리 학교를 산골 오지학교나 벽지학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같은 분교에 다니는 언니나 오빠, 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한가족처럼 지내며 공부할 수 있어 오지학교보다는 '가족학교'로 불렸으면 한다.
올해 입학한 동생은 단 한 명이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릴 때 원천리에서 생활하다가 학교 입학이 다가오면 안동 시내로 이사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님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학교는 원천분교가 아니라 '원천국민학교'(원천초등학교)였다. 분교가 되기 전 본교였던 시절 학생 수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고 들었다.
대도시 학교 학생 수만큼 많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폐교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선생님들은 물론 부모님들도 무척 걱정한다. 1999년 원천초교에서 녹전초교 원천분교가 된 뒤에도 학생 수가 계속 줄고 있어서다. 앞으로 더 줄면 본교인 녹전초등학교에 통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교가 없어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2학년인 친동생 예은이나 올해 입학한 1학년 동생은 어쩌면 원천분교에서 졸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본교에 통합되면 동생들은 면 소재지에 있는 학교를 매일 오가며 수업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서는 모두 4분의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치신다. 도시학교보다 가르치는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선생님들은 더 자상하게 우리를 대해 주신다.
원천초교 어린이들 일과는 대부분 오전 8시를 전후해 시작한다. 일어나면 밥을 먹고 학교로 온다. 대부분 어린이가 집 근처까지 오는 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등교하면서 운동장 두 바퀴를 돌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신 뒤 교실로 들어간다.
2교시 수업이 끝나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공놀이 등을 하면서 체육 활동을 한다. 몇 안 되는 어린이들이지만 20분 동안 넓은 운동장을 선생님들과 마음껏 뛰며 즐겁게 보낸다.
매주 화요일은 모두 학교 버스를 타고 녹전면 소재지에 있는 본교에 가서 본교 친구들과 온종일 통합 수업을 한다.
시골이라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농사를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도시 어린이들처럼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수업을 한다. 방과 후 수업을 위해 정규수업이 끝나면 급식을 먹고 모두 학교 버스를 타고 본교로 이동한다. 본교에 가면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듣는다.
방과 후 수업 과목은 어린이와 부모님들에게 먼저 물어본 뒤 결정하기 때문에 도시학교와 다를 것이 없다.
댄스부터 오카리나나 기타 등 악기 다루는 방법, 컴퓨터나 미술을 배우는 수업이 인기가 있다. 올해부터는 학생들이 원해 청각 장애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화 교실도 개설됐다. 4학년 이상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골프 수업도 있다. 겨울방학이면 스키캠프도 간다.
도시 어린이들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야 해 아주 바쁘게 움직인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는 학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방문학습지를 받아보는 몇몇 친구들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집을 찾는 학습지 선생님을 만난다. 그러나 학습지 하는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동생과 마음껏 뛰어놀며 하루를 보낸다.
내가 다니는 원천분교를 포함해 대부분 시골학교는 학생 수가 계속 줄면 다른 학교와 합치거나 문을 닫게 된다고 들었다. 몇 년간 신입생이 없다고 해서 학교 문을 닫아버리면 그 학교는 영영 다시 문을 열지 못한다고 한다.
학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시골은 점점 더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이 되지 않을까.
농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하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학생 수가 적은 학교를 어른들 기준으로 통폐합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학생이 없을 때 폐교 대신 임시로 학교 문을 닫았다가 다시 신입생이 들어오면 문을 다시 여는 곳이 있다고 선생님에게 들었다.
같이 공을 차거나 술래잡기를 할 친구가 부족할 뿐이지 시골학교가 공부하기 힘든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몇 안 되는 어린이들끼리 모여 자연과 함께하는 학교생활 속에서 미래에 대한 소중한 꿈을 키우기에는 도시학교보다 더 좋다고 느낀다.
공부하기 힘들 것이라는 시골학교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 바뀌었으면 한다.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어 내 동생은 물론 1학년 후배가 우리 학교에서 졸업했으면 좋겠다. 이후로도 더는 문을 닫는 시골학교가 없었으면 한다.
우리 분교는 조만간 본교와 통합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인지 낡은 학교 건물에 대한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 건물에는 줄을 쳐 학생들 통행을 막고 있다. 폐교를 고려해 수리를 미루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골학교 환경이 나아지면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어린이는 없을 것 같다.
교육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게 교육청 등에서도 시골학교에 대한 지원을 더 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도시학교로 떠나는 어린이 수가 줄고, 공부하기 좋은 환경인 원천분교에 입학하겠다며 우리 동네로 이사 오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원천분교에서 공부하는 어린이 수가 늘어나 덩치가 차이 나는 6학년과 2학년이 함께 뛰는 체육 시간이 아니라 비슷한 체격을 가진 또래들이 함께 수업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년 경북에서는 전교생이 3명뿐인 성주군 가천초교 무학분교와 전교생이 10명인 청도군 금천초교 문명분교가 문을 닫는다고 들었는데 우리 학교는 어른들 기준으로 이뤄지는 통폐합 대상에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학교와 학생들을 상대로 취재해 초등학생 1인칭 관점에서 작성했습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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