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지자체 지원인력 태부족, 억지로 배정해도 금방 그만 둬
'6년 공부 고급인력' 수의사 격무에도 처우 낮아 지원 기피
(전국종합=연합뉴스)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철을 앞두고 일선 지자체들이 필요한 수의사를 채용하지 못해 울상이다.
3일 경기도 등 전국 광역자치단체에 따르면 채용 공고에도 수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아 수의직 공무원 구인난을 겪고 있다.
특히 축사가 많아 수의사가 더 필요한 농촌 지역 지자체는 아예 지원자가 없어 채용을 못 하는 실정이다.
경기도는 지난달 21일 18개 직종 연구·지도사 공무원 154명을 선발하는 '제3회 경기도 지방공무원 경력경쟁 임용' 필기시험에서 모두 2천329명이 응시해 15.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경기도와 26개 시·군에서 57명을 뽑는 수의 7급 직종에는 82명만 응시해 1.4대 1의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나마 17명 선발에 39명이 응시한 도와 고양·용인·부천·안양·구리 등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자체가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한 지자체는 AI·구제역 상습 발생지인 안성을 비롯해 여주, 포천 등 14개 시·군이다.
이 중 화성·남양주·의정부·파주·양주·안성·연천 등 12개 지자체는 시험에 응시한 인원이 단 1명도 없었다.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달 31일 동물방역과를 신설한 강원도는 내년 1월까지 도 8명과 시·군 24명 등 32명을 선발하기 위해 모집공고를 냈으나 30명만 지원했다. 모두 합격시킨다 해도 2명이 부족하다.
강원도는 도에서 일괄 채용해 합격자에 한해 도와 시·군에 배치하고 있으나 시·군에 배치된 수의사는 발령 후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경상북도도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7급 수의직 64명을 선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46명밖에 뽑지 못했다.
도와 포항, 구미 등 도시지역 지자체는 예정 인원을 모두 선발했으나 안동, 군위, 의성, 청송, 영양 등 농촌지역 5개 지자체는 아예 지원자가 없어 뽑지 못했다. 구미시와 울릉군은 각각 1명 모집에 1∼2명이 지원했으나 자격기준을 갖추지 못해 모두 불합격 처리됐다.
충청남도는 지난 9월 채용 심사를 마무리해 수의 7급 36명을 채용했으나 목표인 46명을 채우지 못해 다음 달 추가 모집을 할 방침이다.
천안, 공주, 계룡 등 도시지역은 경쟁률이 높았으나 홍성, 부여, 예산 등 농촌지역은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조수일 충청남도 구제역방역팀장은 "올해부터 방역조직이 확대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수의사 채용을 늘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격오지에 가까운 지역이나 가축 사육두수가 많은 지역은 아무래도 지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와 비슷한 수준의 성적으로 6년제 수의대학을 나온 수의사들이 기피부서에 근무하면서도 낮은 처우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공무원 기피의 한 요인이다.
AI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수의직 공무원들은 수개월 간 휴일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려야 한다.
지난 6월 포천에서는 수의직 축산방역팀장이 AI 관련 업무에 매진하다 쓰러져 순직한 바 있다.
채혈이나 접종 과정에서 가축에 밟히거나 채여 다치는 것은 흔한 사례다.
조 팀장은 "한 번이라도 구제역이나 AI를 겪어본 공중방역수의사들은 절대 공무원을 하려 하지 않는다"며 "대규모 AI로 방역수당이 인상되고 인사혜택을 주는 등 사정이 나아지긴 했으나 수의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직급을 상향 조정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2010년 이후 AI와 구제역이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어 방역을 담당할 수의직 공무원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AI의 경우 지난해 11월∼지난 4월 전국 50개 시·군에서 383건이 발생해 3천787만 마리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으며 지난 6월에도 14개 시·군에서 36건이 발생, 엄청난 피해가 났다.
구제역도 지난 2월 충북 보은, 전북 정읍, 경기 연천에서 발생했다.
(임보연 이승형 박주영 우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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