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1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내부자가 바라보는 북한 정권'이라는 주제로 열린 청문회에서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베트남 때처럼 외국투자도 한국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게 북한의 계산이다' 등 미국이나 우리 정부가 새겨듣고 대북전략에 활용할만한 말들을 많이 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각종 강연과 간담회에 참석해 밝힌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미국 대외정책의 키를 쥔 하원 외교위 청문회 증언이라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 국민과 정책입안자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으로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아무쪼록 그의 증언이 미국의 대북정책 수립에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증언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이 결국 한국과 미국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런 선제타격이 자동적인 북한의 반격으로 이어져 큰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타격에 대한 보복으로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은 상식 수준의 정보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점점 현실화하는 국면에서도 미국이 선뜻 공격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태 전 공사의 증언은 더 구체적이어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는 "북한이 전방에 배치한 수만 대의 대포와 단거리 미사일이 한국에서 인명 희생을 낳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장교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사령관의 추가 지시 없이도 (발사) 버튼을 누르도록 훈련받는다"고 말했다. 불과 1년여 전까지 북한 내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그의 증언이니 지금도 그렇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 선택에 극도로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 것이다. 태 전 공사는 이런 점을 들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위협보다 정보전 등 '소프트파워'를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김정은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외부 세계 정보를 북한 내에 퍼뜨려 주민들이 스스로 들고일어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형 시장경제 확산, 한국 영화·드라마 유입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면서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전문가들은 북한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예상했지만 이런 변화들을 볼 때 그러한 반란이 일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 5월 방한 때 태 전 공사를 만나 김정은 체제의 전복 가능성을 논의했다는 보수 정치매체 '워싱턴프리비컨'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이런 시나리오와 관련해 어떤 구상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김정은 체제의 전복까지는 아니라도 대북 협상 카드로서 소프트파워를 활용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북한이 소프트파워에 얼마나 취약한지는 이미 2015년 8월 지뢰도발 때 드러났다. 지뢰도발 이후 남한의 11개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시작되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까지 돌입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결국 방송 재개 15일 만에 유감을 표명하며 물러섰다. 휴전선 일대 확성기 방송 재개만으로도 그런 효과를 얻었는데, 대북전단과 라디오 방송, 드라마 USB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두 수단을 활용해 북한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다면 효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수도권 일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것이 북한의 대남선전 전단이다. 청와대 경내에서 수거되기도 했다. 우리라고 탈북단체에만 맡겨놓을 일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을 압박해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카드로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본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