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위령의 날' 맞아 2차대전 때 희생된 미군·나치 학살자 묘소 방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신이시여, 또 다른 전쟁이 없도록 제발 멈춰 주소서. 이런 무익한 학살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축일인 '위령의 날'을 맞아 2차대전 때 전사한 미군들이 묻혀 있는 로마 근교의 묘지와 나치에 의해 양민들이 학살된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또 다른 전쟁이 나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 로마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해안 도시 네투노의 미군 묘역을 찾아 병사들의 무덤에 헌화하고, 미사를 집전했다.
네투노 묘역은 이탈리아 남부와 로마 해방을 위해 1943년 7월 실시된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작전과 그 이후의 살레르노, 안치오 상륙 작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 7천860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교황은 이날 수 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병사들의 묘역에 자리한 십자가 묘비들 사이를 홀로 천천히 거닐며, 10여 곳의 묘소 앞에 흰색 장미꽃을 직접 헌화하고, 조용히 기도했다.
교황은 이어진 즉흥 설교에서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신이시여, 멈춰주소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됩니다. 이런 무익한 대학살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황은 "세계가 한층 격렬한 전쟁에 돌입할 채비를 하고 있는 오늘, 2차대전에서 숨진 많은 젊은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훨씬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구체적인 전쟁 위기를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발언은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가 핵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으로 읽히고 있다.
교황은 인류가 전쟁의 결과는 죽음임을 깨달아야 하며, 과거의 전쟁에서 아들과 남편들을 잃은 어머니, 아내들의 눈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어 "인류는 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고, 교훈을 얻으려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며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희생자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교황은 네투노 묘역 방문 이후에는 1944년 3월, 나치 점령군이 청소년을 포함해 무고한 이탈리아 양민 335명을 잔혹하게 학살한 로마 근교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 들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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