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화 목사 딸…"과거사 부정하는 일본, 인권개선 갈 길 멀어"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군인·경찰·폭도 등이 6천여 명의 조선인을 살해한 일에 대해 일본 정부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확인·사과 등이 공식화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할 겁니다.
매년 9월 1일 일본 도쿄의 재일한국YMCA에서는 관동대지진 때 희생된 조선인이 존재를 알리는 집회가 열린다. 지진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의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인해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일본사회가 외면하거나 잊으려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집회다.
이 행사를 주도하는 9·1집회 실행위원인 최선혜(51·여) 씨는 재일 인권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 최창화(1930∼1995) 목사의 딸이다.
3·1 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청으로 '2017 민족대표보고회 및 전국화와 한반도평화 추진 선언식'에 참석한 최 씨는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없었던 일처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재일동포 멸시의 상징이며 차별과 인권침해의 원점이다. 이를 규명해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일은 일본이 다문화 공생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인권운동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아버지가 주장했던 재일동포 차별 금지는 일부만 이뤄졌을 뿐"이라며 "과거에는 우익만이 반대했다면 이제는 일본사회 전체가 인권에 눈을 감으려는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씨의 부친은 1968년 차별에 반발해 일본인 야쿠자를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였던 김희로 씨를 면담한 후 인권운동에 뛰어들었고, 일본 공영방송인 NHK를 대상으로 한국인 이름을 원어 발음대로 읽기를 요구하는 인격권 소송(1975~1988)을 시작으로 공영주택 입주 운동(1976), 유엔에 재일동포 인권침해 사례 문건 제출(1979), 지문날인 거부 운동(1980∼1989), 지방참정권 획득 운동(1975∼1995), 9·1집회 주도 등 재일동포 인권개선에 앞장섰다.
일본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지문날인 등록이 차별이라며 거부운동이 시작되자 그는 부친과 함께 참여했고, 재판과정에서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최 씨는 "우익이 집에 보내온 우편물에는 섬뜩한 가위와 함께 '죽이겠다'거나 '일본을 떠나라'는 폭언이 쓰여 있었다"며 "테러를 당할까 봐 등하굣길에 부친이 함께했고 집의 모든 창문에는 쇠창살을 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제는 방송 등 미디어에서 한국인 이름을 발음 그대로 읽고 있고 지문날인도 없어졌지만 관동대지진 학살, 일본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탄광에 강제징용돼 희생된 이들에 대해 사과와 보상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최근의 헤이트스피치 등에서 보듯 재일동포 인권개선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친이 남긴 200박스에 달하는 인권운동 자료 정리에도 매달리는 최 씨는 "기념관 건립이나 평전 출판 등을 통해 평생 인권개선에 헌신해온 부친의 삶을 알리는 것도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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