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기차를 거부한 도시들

입력 2017-12-02 11:00   수정 2017-12-02 11:04

[쉿! 우리동네]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기차를 거부한 도시들

경부선철도 비껴간 경북 상주·경기 안성, 발전 소외 아쉬움

'유지들이 철도 반대했다' 소문 무성하지만 기록·증거 없어





(상주·안성=연합뉴스) 김종식 손대성 기자 = 2004년 경부고속철도 일부 구간이 개통된 이후부터 사정이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대한민국 철도 대동맥은 누가 뭐라고 해도 경부선이다.

경부선은 한자로 서울을 가리키는 경(京)과 부산 앞글자인 부(釜)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말 그대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이 철도 노선은 1905년 1월 1일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경부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이후 경부선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며 역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경부선 노선은 어떻게 확정됐을까.

서울과 부산을 잇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1900년대 초를 기준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를 지나되 짧게 가야 한다면 서울-안성-청주-상주-대구-부산 노선이나 서울-이천-충주-문경-상주-대구-부산 노선이 유력했다.

아니면 충남의 큰 도시를 거치기 위해 서울-수원-천안-공주-논산-영동-김천-대구-부산 노선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일본은 1901년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해 경부선 공사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미 1890년대부터 경부선 건설과 관련해 다섯 차례 답사와 실측을 하며 여러 가지 노선을 검토했다고 한다.

1892년 서울-용인-죽산(안성)-진천-청주-상주-선산(구미)-대구-부산 노선을 제일 먼저 답사했다.

당시엔 충북 청주와 경북 상주가 큰 도시였기 때문에 직선과 가까운 형태이면서 큰 도시를 연결하는 안으로는 가장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결국 경부선은 건설 경제성 등을 따져 현재 노선으로 확정됐다.

충청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는 소백산맥을 지나는 철도를 단기간에 놓으려면 가장 낮은 고개를 지나야 한다.

그 이유에서 선택한 고개가 바로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사이에 있는 추풍령이다. 대중가요엔 추풍령이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고 했지만 사실 해발 221m로 다른 소백산맥 고갯길보다 상당히 낮다.

철도교통사를 전공한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단기간에 직선거리를 연결하기 위한 노선을 만들다가 보니 추풍령을 지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경부선 노선은 많은 도시 운명을 바꿔놓았다.

대전을 비롯해 경북 구미와 김천은 경부선의 혜택을 받아 도시가 성장한 지역이다.







반면 경북 상주와 경기 안성처럼 경부선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개발 축에서 소외된 도시도 있다.

경상도라는 말은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왔다. 그만큼 신라 천년 고도 경주와 더불어 상주가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였다는 뜻이다.

경부선이 개통된 이후 1931년 대전면과 상주면은 나란히 대전읍과 상주읍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두 지역의 발전 속도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2016년 말 기준 대전시 인구는 151만4천370명이지만 상주시 인구는 10만1천799명이다.

상주는 감, 포도, 배, 쌀 등을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상주 지역 개발이 느린 이유는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부 상주시민은 경부선 노선을 결정할 때 유림을 비롯한 상주지역 유지들이 철도를 반대하는 바람에 노선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상주로 경부선이 지나갔다면 김천으로 간 혁신도시나 안동·예천으로 간 경북도청을 유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인구가 50만명 안팎에 이르는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경부선 노선이 상주를 지나지 않았던 이유가 유지들 반대 때문이란 증거는 없다. 시위를 했다거나 집단 항의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 주민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100년이 지난 만큼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도 물론 없다.

이 때문에 유지 반대설은 후대에 와서 경부선이 지나가지 않은 상황을 아쉬워하며 만들어낸 얘기란 말도 있다.

금동현 상주시문화원 부원장은 "상주사람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질이 있다"면서 "기록은 남은 게 없지만 경부선 노선을 결정할 때 향촌 지배세력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고 말했다.

곽희상 상주향토문화연구소장은 "상주시민은 안동에 있던 육군 36사단을 상주로 이전하려는 것을 반대했고 KBS방송국 중계소 이전도 반대했다"며 "180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 상황인 만큼 기록이 남은 것은 없지만 후대에 만들어진 얘기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경기 남부를 대표하는 안성 역시 상주처럼 개발축에서 조금 벗어났다. 철도와 고속도로 구간을 보면 안성 인근에서 다소 구부러져 평택을 지난다.

이 지역도 유지들이 반대해 철도가 비껴갔다는 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 안성은 사통팔달 교통망이 발달한 데다가 안성장이 전국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크고 도심이 형성돼 있어 양반이 많이 살았다.

이에 반해 인근 평택은 서해바닷가 어부와 농민만 거주하는 곳으로 분류됐다.

'안성사람, 평택놈'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안성지역 70대 이상 노인들은 "조선 시대에 동서와 남북으로 발달한 사통팔달 교통망으로 전국 물건이 안성장으로 모여 큰 호황을 이뤘던 경기 안성시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몰락하기 시작했다"란 말을 전한다.

가장 큰 이유로 경부선 노선이 안성을 비켜 평택을 지나간 점을 든다.

당시 양반이 많이 살고 있던 안성지역 유지들이 소음과 공해를 유발하는 철도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주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반대 시위 등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1898년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가해 '경부철도계약'을 체결하고 철도건설을 추진하면서 당초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경부선철도의 노선이 용인(백암장)을 거쳐 안성(안성장)으로 통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1899년 조사를 거쳐 서울-수원-평택-둔포-공주 노선으로 결정했다.(1929년 조선총독부철도국 자료)

당초 계획 노선에서 서쪽으로 20여㎞ 떨어진 평택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이 경부철도 노선과 해운을 연결해 편리하게 일본에 물자를 운송하려고 하던 차에 1898년부터 1899년 사이 안성지역 양반들의 심한 반대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철도 노선을 변경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면서 물류 중심이 평택으로 옮겨갔고, 안성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던 안성지역 주민이 1919년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의 사설철도선 계획에 따라 충남 천안에서 안성까지 철도계획을 적극적으로 찬성해 1925년 천안에서 안성까지 28.4㎞의 철도가 완공됐다.

그러나 영업실적이 좋지 않아 60년만인 1985년 4월 운행이 중지됐다.

김태원 전 안성문화원장은 "조선 시대 안성지역은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춰 안성장이 서울장보다 더 크게 열릴 정도로 크게 번창했으나 철도를 유치하지 않아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장인정신으로 만들어 유명했던 안성 유기도 함께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재정 교수는 "경부선이 설계될 당시 일부 지역에서 반발해 노선이 바뀌었다는 소문은 전해지지만 사료에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며 "경부선 철도가 완공된 이후 사람과 물자를 수송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철도가 지나가는 도시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jongsk@yna.co.kr, sds1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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