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확대·임금인상·정규직 전환·근로시간 단축…상충 관계를 어떻게 한꺼번에"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기본적으로 현 정권은 기업을 범법자로 보는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잘못됐으니 뜯어고치라는 식."
출범 6개월을 맞는 현 정부의 기업 관련 시각과 정책 방향을 대기업 한 관계자는 이렇게 요약했다.
이처럼 최근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확대, 법인세율 인상 등 현 정부와 사법부가 몰아치듯 '경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대해 심한 압박감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이 잘못된 관행을 고칠 필요는 있지만, 별다른 지원이나 대책도 없이 '많이 고용하고 임금도 올리면서 안정적 직장을 보장해주고 근로시간도 줄이라'는 식의 요구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학계에서도 "정부가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는 소홀하면서 기업에 비용 부담만 지우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임금·근로시간·법인세 변화에만 연 70조 원 추가 부담
5일 각 경제·경영 관련 단체, 연구기관 등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이 현 정부나 사법부가 요구하는 주요 개혁을 모두 수행하려면 한해 최소 70조 원대, 최대 100조 원이 넘는 비용이 추가로 들 것으로 추산된다.
우선 지난 7월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인상 폭(16.4%)이 2001년(16.8%) 이래 최고 수준으로 결정되면서, 중소기업중앙회는 당장 내년에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 전체 인건비가 15조2천억 원 더 들 것으로 예상했다.
더구나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지켜질 경우, 중소기업의 인건비 추가 부담액(2017년 대비)은 2020년부터 한 해 81조5천259억 원에 이른다는 게 중기중앙회의 계산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행정해석 개정을 통해서라도 실행하겠다는 '1주 최장 근로시간 68→52시간 단축' 역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기업이 추가로 연간 12조3천억 원(한국경제연구원 추산)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아차 1심 선고와 마찬가지로 정기 상여금 등이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동시에 '신의 성실 원칙' 배제로 '소급 지급' 명령까지 이어질 경우, 기업은 최대 38조5천509억 원(한국경영자총협회 추산)의 추가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과거 3년간의 임금 소급분 24조8천억 원, 통상임금과 연동해 늘어나는 각종 수당(초과근로 수당 등)과 간접노동비용(퇴직금 등) 증가분 1년 치 8조8천억여 원을 합한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상위 대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도 3조1천억 원 늘어난다.
기획재정부가 8월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최고 법인세율이 25%(과세표준 2천억 원 초과 구간)로 높아진 데다 그동안 일부 감면받았던 연구·개발(R&D) 비용과 설비 투자액에 대한 세액공제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변화가 확정됐거나 확실시되는 정책 이행에만 기업 입장에서 거의 한해 70조 원대 추가 비용(최저임금 15조2천억+근로시간 단축 12조3천억+통상임금 38조5천억+3조1천억 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중기중앙회의 2020년 이후 '최저임금 1만 원' 가정 시 연 추가 비용(81조5천억 원)을 넣지 않아도 이 정도다.
더구나 여기에 여당 주도로 국회에 발의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 지주회사 부채비율 규제(200%→100%)이나 자회사 주식보유기준이 강화(40%→50%)될 경우, 대기업 지주회사는 계열사 지분 등을 추가로 확보하는데 수십조 원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5대 그룹 전문경영인과의 간담회에서 지주회 수익구조 실태조사를 예고하면서 "(현 수익구조가) 지주회사 제도 도입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문제는 없는지, 나아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인지 등에 대해 살펴볼 계획"이라며 압박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 관세율이 조정되거나(한국경제연구원 5년간 최대 19조 원 수출 손실 예상),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편, 탄소배출권 거래제 유상할당 등까지 실행되면 기업들의 연간 추가 비용 부담이 1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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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제·경영 이슈 관련 기업 부담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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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주요 내용 │추정값(추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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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현행 6천470원→내년 7천530원 인 │15.2조원(중소기 │
│ │상(16.4%) │업중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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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주당 최장 근로시간 68→52시간 단│12.3조원(한국경 │
│ │축 │제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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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산정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인정 등 │38.5조원(경총) │
│ 범위 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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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규제 │자회사 손자회사 지분 일정비율 이│수 십조원(그룹별│
│ │상 보유, 지주사 부채비율 100%로 │상이) │
│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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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율 인상 │최고 세율 구간 신설(과표 2천억원│3.1조원(기재부) │
│ │ 이상,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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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R&D 세액공제 축소(1~3%→0~2%) ││
│세액공제 축소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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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재협상│ 한미FTA 재협상 결과 관세율 재조│19조원(한국경제 │
│ │정 경우 │연구원, 5년간 최│
│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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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보복 │ 중국 사드보복으로 인한 한국경제│8.5조원(현대경제│
│ │ 피해금액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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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대한 비용 필요한 개혁 요구하려면 기업 규제도 풀어줘야"
이런 재계의 불안과 불만을 잘못된 관행을 바꾸지 않으려는 '저항', '엄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재계뿐 아니라 학계 등에서도 "현 정권이 너무 서둘러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의 요구를 모두 실천하려면, 기존 임금·근로 체계를 포함한 경영 시스템 전반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이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안"이라며 "비용 부담뿐 아니라 고용 확대, 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전환 등 주요 정책 방향 중에는 실행 과정에서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까지 있어 무조건 압박한다고 기업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들에 큰 비용이 들더라도 정권의 정책에 맞춰 개혁을 서둘러달라고 요청하려면, 동시에 그만큼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들에도 '살 길',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통상임금, 정규직 전환 등으로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을 느끼더라도, 기업의 경제활동이 자유롭다면 비용을 어떻게든 지불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비용만 늘어나고 투자 등 기업활동 하기 좋은 여건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어려움을 '엄살'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도 과거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하지만, 공익법인 전수조사 등 지나친 행정행위는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만 기업 여건에 불만을 터뜨린다면 왜곡일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투자기업들의 회의 석상에서도 한국의 규제 등 투자 환경 악화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세계투자보고서(WIR)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비율(2016년 기준)은 0.8%로 세계 237개 나라 가운데 15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3위에 머물고 있다.
예를 들어 룩셈부르크 GDP는 한국의 4% 수준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우리의 2.5배에 이르고, GDP가 한국 절반 수준인 네덜란드의 외국인 직접투자액도 우리의 8.5배 수준이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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