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미옥'은 표면적으로는 폭력과 권력 암투가 횡행하는 범죄조직 주변의 살풍경을 그린 영화다. 그러나 속물적 이익의 이면에서 인물들을 움직이는 욕망이 의외로 인간적이고 평범함을 보여줌으로써, 자칫 잔혹함과 비정함을 전시하는 데 그칠 수 있는 누아르물의 한계를 극복한다.
일개 범죄조직을 제철그룹이라는 이름의 재계 유력기업으로 키워낸 조직의 2인자 나현정(김혜수 분). 더럽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조직에 충성하는 해결사 임상훈(이선균). 20년 가까이 쌓아온 두 사람의 신뢰는 야망에 가득 찬 검사 최대식(이희준)이 등장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검사장 딸과 결혼하며 출세가도에 막 들어선 최대식은 제철그룹 수사에 나선다. 나현정과 임상훈은 그룹의 앞날을 가로막는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함정을 파고, 최대식은 미끼를 덥석 문다.
나현정과 임상훈은 결정적 약점을 잡아 최대식을 협박한다. 그러나 최대식은 수사를 적당히 덮는 선에서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최대식이 확보한 나현정 관련 첩보는 십수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한 임상훈마저 알아채지 못한 내밀한 것이었다.
나현정의 비밀을 임상훈에게 알린 뒤, 그를 이용해 나현정을 제거하고 자신의 치부 역시 가리겠다는 게 최대식의 전략이었다. 이야기는 이때부터 세 사람이 가진 욕망 사이의 역학관계에 따른다.
임상훈이 나현정에게 등을 돌리게 된 건 그룹 후계구도에서 자신의 몫이 없다는 사실보다 나현정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다. 임상훈은 배신감 쪽으로 기우는 듯하지만, 나현정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결정적 순간엔 그를 향한 선한 감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나현정을 움직이는 동력은 의외로 평범하다. '칼질'과 피칠갑이 난무하는 어둠의 세계에서 은퇴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다.
은빛 반삭발 차림의 김혜수는 장총을 쏘고 전기드릴과 단도를 휘두르는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전체적으로 액션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김혜수로서는 30여 년 연기 경력에서 처음 본격적인 액션에 도전한 작품이다.
'미옥'은 그동안 상남자들의 전유물 같았던 누아르에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영화다. 임상훈과 최대식은 오로지 뜨거움과 차가움, 화려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나현정의 복합적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조력자로 설정된 듯하다.
그러나 서사는 오히려 임상훈의 감정과 의지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전개된다. 나현정은 그간 누아르 영화 속 여성에게 주어진 팜므 파탈 역할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모성애라는 여성적 욕망을 따른다는 점에서 반쯤은 전형적 인물이다.
이안규 감독은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남자들이 판치는 장르 안에서 활개 치는 멋진 여자 주인공을 보고 싶었다"며 "어두운 세계에 놓여있는 인물들의 보편적이고 사소한 관계와 감정, 그리고 그 관계가 작은 이유들로 뒤틀리는 모습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마부인'으로 1980년대 충무로를 풍미한 배우 안소영이 나현정의 비밀 작업공간 관리자 역할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이준익·김지운 감독의 조연출로 경력을 쌓은 이안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지난달 시체스영화제 포커스 아시아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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