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한방이면 퇴치되던 멸강나방 5.4배, 먹노린재 57.7% 증가
유기농 자재 방제 효과 뒤처져…월동단계부터 적극적인 대응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서 1만3천㎡(4천평)의 벼농사를 짓는 황모(43)씨는 올해 가을걷이가 풍성하지 않다.
벼 줄기에 달라붙어 즙을 빨아먹는 먹노린재가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쭉정이로 변한 이삭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해 농사에 뛰어든 그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없앤 친환경 농사에 심취됐다.
비료 대신 볏짚과 가축분뇨로 땅심을 북돋워줘야 하고 병해충에도 취약해 품이 많이 드는 농사법이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올해는 친환경 농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해충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농약을 칠 수 없다보니 무기력하게 피해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황씨는 "대개 논 200평에서 벼 400㎏을 수확하는 데, 먹노린재 피해로 이삭이 마른 곳에서는 수확량이 절반 넘게 줄었다"고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전국적으로 벼 해충이 확산돼 피해를 키웠다. 예전 같으면 농약 한방으로 쉽게 방제되던 먹노린재와 멸강나방 등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한 올해 전국의 먹노린재 발생 면적은 2만1천118㏊로 추정된다. 전남(9천316㏊)과 충남(6천341㏊), 전북(3천430㏊) 등 서해안권을 중심으로 피해가 컸다.
먹노린재는 논 주변 산림이나 수풀 등에서 월동한 뒤 6월 하순 논에 날아들어 피해를 낸다. 1997년 충남북에서 대량 발생한 뒤 방제약품 등이 개발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해충이다.
벼·옥수수 등 볏과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멸강나방도 충남(1천704㏊), 경남(503㏊), 전남(278㏊)을 중심으로 3천321㏊에서 발생했다.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이 해충도 최근 피해가 거의 보고되지 않던 종류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먹노린재 피해는 작년보다 57.7% 늘고, 멸강나방은 무려 5.4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올봄 고온건조한 날씨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원인이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해충 확산이 기후 온난화나 친환경 농업 확대 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월동 생존율이 높아졌고, 농약사용까지 줄어 서식환경이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정부는 2001년부터 농업 분야에 친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인증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과 일정량 이하의 화학비료만 사용하는 '무농약'이 있는데, 정부는 직불금(장려금)까지 주면서 농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사업 첫해 4천678농가·4천554㏊이던 친환경 인증은 지난해 6만1천946농가·7만9천479㏊로 15배 가까이 확대됐다. 병해충에 취약한 농지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물론 친환경 농사라고 해서 병해충에 완전히 무방비한 것은 아니다. 식물 추출물 등 천연물질로 만든 유기농 자재가 개발돼 병해충 관리와 토양개량용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병해충 관리용으로 공시된 유기농 자재만 452종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 제품은 농약에 비해 방제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적용대상도 세분화되지 않아 농약처럼 맞춤형 사용도 힘들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인증관리팀 강석헌 주무관은 "유기농 자재는 공시된 제품이라도 효능이나 효과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어서 농약에 비해 방제 효과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벼 뿐만 아니라 복숭아·포도 등 과수에도 해충 피해가 늘어나는 추세다. 외국서 들어온 갈색날개매미충이나 미국선녀벌레가 극성을 부리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농민들은 기후변화와 친환경 농사 확대 등으로 이 같은 해충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몇 해 전 충북 영동에서는 갈색여치가 대량 번식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복숭아와 포도밭 등에 큰 피해를 낸 바 있다. 우리나라 중·북부지역 산림 등에 서식하는 토종의 갈색여치가 갑자기 개체수를 불려 농작물을 습격한 것이다.
당시 농민들은 농약 사용을 못 해 과수원 주변에 비닐로 차단막을 치거나 나무 주변에 접착제 트랩(끈끈이)를 설치해 일일이 갈색여치를 잡았다.
농촌진흥청 작물환경과 박창규 연구사는 "해충 확산 원인을 친환경 농사와 결부 지을 근거는 없지만, 친환경이 병해충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라며 "미리 월동처를 찾아내 농경지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 충남 당진에서 먹노린재 피해를 크게 봤던 농민이 주변 산림을 집중 방제해 피해를 막은 사례가 있다"며 "친환경 단지라도 성충이 되기 전 유기농 자재 등을 사용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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