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란 패권다툼에 레바논 '새우등' 터진다

입력 2017-11-08 10:32   수정 2017-11-08 11:08

사우디-이란 패권다툼에 레바논 '새우등' 터진다

총리실종이 신호탄…정치·경제적 고난 예고

유혈사태 우려…"종파간 내전·이스라엘과 전쟁 날 수도"

(서울=여합뉴스) 노재현 기자 = 중동의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틈에서 레바논이 풍전등화에 몰렸다.

미국 행정부의 대이란 적대정책에 편승해 사우디가 패권 행보를 노골화함에 따라 이란의 주요 거점인 레바논은 급격한 정정불안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이란과의 다툼을 가속화하면서 레바논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 붙들렸다"고 7일(현지시간) 이런 상황을 요약했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 마론파 기독교계가 권력을 균점하는 나라다.

그러나 2011년 발발한 시리아내전을 두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이 심해졌고 사우디와 이란의 충돌에 휩쓸려 정국이 수년째 불안한 상황이다.

최근 레바논을 둘러싼 정세는 숨이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사드 알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지난 4일 사우디를 방문하던 중 총리직 사임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긴장수위가 높아졌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헤라리 총리의 사임은 그 자신이 아닌 사우디의 결정"이라며 사우디를 비난하고 나섰다.

게다가 예멘 반군 후티(안사르 알라)가 4일 밤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을 겨냥해 미사일 1발을 쐈다가 요격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후티는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 반군이다.

이에 사우디는 이란뿐 아니라 레바논 정부를 직접 언급하며 날을 세웠다.

사우디의 타메르 알사반 걸프담당장관은 6일 아랍권 매체와 인터뷰에서 "헤즈볼라의 적대행위 탓에 레바논 정부는 사우디에 선전포고를 한 국가로 취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FT는 레바논 분위기가 레바논 신문 '알아크바르'의 1면에 실린 '인질'(hostage)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레바논이 헤즈볼라를 배제하라는 사우디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우디에 의해 심각한 정치·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바논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치세력인 헤즈볼라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지원해 6년 내전의 전세를 바꾸는 데 기여한 무시못할 조직이다.

무디스, 씨티은행 등 국제투자은행(IB)들은 이날 레바논 경제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며 레바논에서 달러화로 표시된 채권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레바논 경제학자인 사미 나데르는 "강력한 수니파 걸프왕정들이 헤즈볼라 인사들뿐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는 레바논 정치인들에 대한 제재를 추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FT는 레바논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고 레바논 내 은행들에 현금 송금이 막힐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레바논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다.

FT는 사우디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기를 원하거나, 심지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계획을 인지하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사우디의 주장과 똑같이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지원한다고 수년간 주장해온 게 사실이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FT에 사우디의 예멘 내전개입, 카타르에 대한 봉쇄외교, 전격적인 자국내 왕족숙청을 거론하며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기 마련이라고 보지만 이런 전제가 유지되기에는 사우디에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레바논에서 내전이나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며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상황에 겁이 난다"고 덧붙였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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