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향토음식] ① 자연 그대로 싱싱함이 맛의 원천

입력 2017-11-19 06:00  

[제주향토음식] ① 자연 그대로 싱싱함이 맛의 원천

봄·여름·가을·겨울 제철따라 입맛 돋우는 대표 음식

자리물회, 갈칫국, 고기국수, 성게국, 돔베고기 등 20선

[※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향토음식을 먹지 않고는 그 지역의 문화를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연간 1천만명 이상의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지만, 자극적인 입맛에 길든 현대인들은 정작 진정한 제주향토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돌아가기에 십상입니다. 450여 가지에 달하는 제주향토음식 중 봄·여름·가을·겨울 제철에 따라 맛볼 수 있는 대표 음식을 소개하고, 전문가와 함께 그 가치와 특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몸에도 좋은 건강한 먹을거리로서 제주향토음식을 보전하고 전국,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방안과 과제를 3편에 걸쳐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향토음식의 특색은 산과 들, 바다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신선한 청정재료에 있다.

싱싱한 원재료의 맛을 간직하면서 멋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조리한 제주향토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계절에 따라 나오는 식재료들과 이를 바탕으로 요리되는 음식을 알아야 한다.

쌀쌀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제주에서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날까.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단연코 '갈치'를 선택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을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도 맛있고 은빛 비늘은 황소값보다도 높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을 갈치에 잘 익은 늙은 가을 호박을 넣어 끓인 갈칫국은 환상적인 조합이 된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과 젓가락으로 툭 떼어 낸 갈치살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끓는 물에 갈치를 토막 내어 넣고 거의 익을 때쯤 채소를 넣어 마지막에 국간장으로 간을 하면 되는 초간단 음식인 갈칫국.

그 맛의 시작과 완성은 재료의 싱싱함에 있다.





다른 지역에서 갈치로 국을 끓여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흰살생선임에도 지방이 많아 싱싱한 갈치가 아니면 비린내가 나서 국을 끓일 수 없다.

제주에서는 당일 조업해 잡은 '당일바리' 은갈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국을 끓여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 먼바다에 가서 여러 마리를 한 번에 낚아 올리는 '주낙'으로 갈치를 잡아 선상에서 바로 급속냉동한 갈치가 있기는 하지만, 최고 중의 최고는 가까운 바다에서 한 마리씩 '채낚기'로 잡은 당일바리 생갈치다.

냉동갈치와 생갈치는 조리 후 그 질감과 맛에 차이가 있다. 생갈치로 끓인 경우 맛이 더 달착지근하고, 갈치살이 더 부드럽다.

이외에도 제주에서는 은갈치를 재료로 갈치구이, 갈치조림, 회를 만들어 먹는다.

싱싱한 은갈치의 비닐을 벗겨내지 않고 내장만을 제거한 뒤 등에 칼집을 내어 굵은 소금만 뿌려 구워 먹는 갈치구이의 고소함이나 '밥 도둑'이나 다름없는 갈치조림의 맛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맛이다.

'생선 중의 생선'이라 일컬어지는 옥돔은 12월에서 2월인 한겨울에 가장 맛이 오른다.

제주에서는 옥돔만을 유독 '생선' 또는 '솔라니'라고 불러 갈치나 고등어 등 다른 어류보다 귀하게 대접했다.

옥돔의 배를 갈라 손질한 후 찬바람이 나는 그늘에서 고들고들하게 말린 뒤 배 쪽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 구워 먹는 옥돔구이의 맛은 일품이다.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죽이나 국을 끓여 회복이 필요한 환자에게 먹였다.





겨울에 나는 중요한 제주의 식재료로는 메밀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겨울 메밀과 겨울 무로 만든 빙떡은 제주의 별미음식이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자주 찾게 되는 웰빙음식 중 하나다.

먹을 것이 귀했던 겨울에는 중산간(해안과 산지의 중간지대)에서 꿩 사냥을 했는데, 꿩을 삶은 국물에 메밀반죽으로 면을 만들어 무채와 함께 끓인 꿩메밀칼국수도 많이 먹었다.

봄이 되면 제주의 산과 들에는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꺾어온 햇고사리는 삶은 후 말려 제수용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말리기 전 햇고사리는 돼지고기를 넣고 볶아 먹기도 한다.

제주의 천연고사리는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을 올릴 정도로 뛰어난 자연식품으로, 2013년 국민이 뽑은 제주 7대 특산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소고기와 대파를 주재료로 육개장을 만드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만든 제주의 고사리육개장은 생김새나 맛이 전혀 다르다.

오랫동안 푹 끓여 실타래처럼 풀어진 고사리와 고깃국물이 어우러진 고사리육개장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제주의 유명 향토음식이 됐다.

이쯤 되면 제주의 돼지고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0∼40년 전까지 '돗통시'라고 하는 돌담으로 두른 변소에서 길러지면서 청소부(?) 역할을 도맡아 '똥돼지'라는 별명을 얻었던 제주흑돼지는 유명하다.

굳이 흑돼지가 아니더라도 제주의 돼지고기는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보다도 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돼지고기로 만드는 대표적인 제주향토음식은 돔베고기다.

제주사람들에게 돼지고기는 언제나 즐겨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나 어렵사리 먹을 수 있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손님 접대를 위해 돼지를 잡고 뼈나 내장 등 부위는 국물 음식으로 이용했고, 살 부위를 편육으로 만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돔베고기다.

다른 지역의 편육과는 달리 삶은 고기를 누르지 않고 뜨거울 때 도마에서 썰어서 먹던 데서 유래됐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사투리다.

돼지를 삶았던 국물에 제주 사투리로 '몸'이라고 하는 모자반과 배추·무 등을 넣고 끓여 '몸국'을 만들기도 했다.

돼지고기육수에 국수를 말아 돔베고기를 고명으로 얹으면 고기국수가 된다. 보통 다른 지역의 잔치국수는 쇠고기 육수나 멸치육수에 소면을 사용하지만, 제주에서는 돼지고기육수에 중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 인심은 구살국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제주에서는 성게를 '구살'이라고 불렀는데, 채취량이 너무 적어 성게국은 잔치 때나 구경하는 귀한 국이었다.

5월에서 7월 사이인 보리 익을 무렵이 가장 맛있어서 이때의 성게를 '보리성게'라고도 한다.

밤송이 같은 성게의 겉모습과는 달리 노란 알이 먹음직스러운데, 성게의 알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이 많아 빈혈 환자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았다.

성게국은 성게알에서 우러나오는 노란 국물과 미역이 어우러져 구수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데 제주에서는 기계건조가 아닌 바람에 말린 가파도 미역을 넣어 끓인 성게국을 최고로 친다.







여름에 먹는 별미로 자리돔이 있다.

도미과에 속하는 자리돔은 한자리에 모여 살아 '자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다'고 하지 않고 '뜬다'라고 표현한다.

자리물회는 보리 베기가 한창인 6월에서 7월 중순 사이에 많이 먹으며, 이때가 자리돔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제주에서는 '자리물회 다섯 번만 먹으면 무더위 보약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여름철의 주요 먹을거리였다.

큰 자리는 비늘을 벗기지 않고 통째로 소금을 뿌려 구워 먹고, 보통 '쉬자리'라 하는 크기가 작은 자리로 물회를 만든다.

예부터 제주 모슬포 지역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거센 바다조류에 적응해 살기 때문에 색이 짙고 뼈가 억센 편이라 소금구이에 적당하고, 서귀포 특히 보목리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색이 밝고 크기가 작으며 가시가 연해 뼈째로 썰어 물회로 만들어 먹기에 적당하다고 했다.

자리물회는 뼈째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뼈나 가시가 씹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리의 살만 포를 떠서 물회를 만들기도 한다.



◇ 제주의 대표 향토음식 20선

제주향토음식은 450여 종으로, 제주도 당국은 2013년 꼭 맛봐야 할 대표적인 먹을거리 7가지를 선정했다. 그러나 품목이 너무 한정돼 있다는 지적이 있어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전문가, 도민, 관광객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와 온라인 투표를 거쳐 제주향토음식 20가지를 선정했다.







선호 순에 따른 제주향토음식 20선은 자리물회, 갈칫국, 고기국수, 성게국, 한치물회, 옥돔구이, 빙떡, 갈치구이, 옥돔국, 자리구이, 소라물회, 돔베고기, 몸국, 꿩메밀칼국수, 오메기떡, 오메기술, 말고기육회, 고사리육개장(돼지고기육개장), 전복죽, 해물뚝배기가 차지했다.

[※ 이 기사는 '제주향토음식도록'(제주특별자치도), '맛과 건강을 창조하는 제주향토음식 20선'(제주특별자치도·제주대학교), '제주의 농촌밥상을 엿보다'(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향토음식을 소개한 것입니다.]

b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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