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향토음식] ② "지역 고유문화 전하는 메신저 역할"

입력 2017-11-19 06:00  

[제주향토음식] ② "지역 고유문화 전하는 메신저 역할"

제주 유일의 향토음식 명인 김지순·양용진 모자

"토종 재료로 제대로 만든다면 외면하지 않을 것"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토종 재료로 제대로 만든 향토음식이라면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50여년간 제주향토음식을 연구하며 제주의 유일한 향토음식 명인으로 이름을 알린 김지순(81·여) 선생과 그의 아들 양용진(53)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원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제대로 만든 향토음식'이란 말에 방점을 찍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명인은 2010년 '향토음식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제주도 초대 향토음식 명인으로 선정된 때를 전후해 아들과 함께 제주향토음식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제주향토음식은 제주의 문화이자 건강한 삶을 위한 건강식 그 자체였다.

김 명인은 "제주향토음식은 복잡하지 않아요. 어패류 등 신선한 원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이라서 양념을 많이 쓰지 않는다"며 "예로부터 고추농사가 안돼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명인은 "제주 사람들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은 제철음식을 만들어 사계절 파릇파릇한 푸성귀로 쌈을 싸서 먹었다. 어렵게 살던 시절 양이 부족해 음식이 다소 빈약하더라도 영양면에서는 고르게 섭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슬로푸드이자 웰빙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양 원장은 "오늘날 (서구식 식사패턴과 외식이 잦은) 현대인들의 영양 상태에서 본다면 제주향토음식 이상 좋은 음식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며 "제주 향토음식으로 된 밥상을 본 한 대학 교수는 '오래된 미래'라고 극찬을 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우리 현대인들이 먹어야 할 밥상이 바로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먹었던 향토음식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가치 있는 밥상이라는 것이었다.






제주향토음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조냥정신('절약정신'을 뜻하는 제주어)을 들었다.

김 명인은 "자리젓을 먹다 보면 나중에는 가시만 남게 되는데 제주사람들은 이걸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물을 넣고 끓여 국으로 만들어 먹었다"며 "제주음식을 보면 참으로 절약해서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쉰 밥에 누룩을 넣어 쉰다리(제주 토속 발효음료)를 만들어 먹었겠느냐고 강조했다.

양 원장도 "생선을 먹을 때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쓸개 정도만 빼서 나머지를 모두 먹었고, '자리'인 경우 비늘을 벗기지 않고 가시까지 완전히 먹을 수 있도록 바싹 익혀 먹었다. 옛날 제주 사람들처럼 먹는다면 요즘과 같은 음식물 쓰레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며 거들었다.

제주야말로 몇백년 전부터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 식습관이 생활화돼 있는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매크로바이오틱이란 음식재료를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로 보고 흔히 버리는 부분인 껍질과 뿌리까지 통째로 요리하고 제철음식을 먹는 자연식 식이요법이다.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제주향토음식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을 내비쳤다.

김 명인은 제주에서 나는 10가지 해조류를 재료로 향토음식 발표를 하는데 정작 음식을 재현하는 것보다 식재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넓패라는 해조류를 해녀들에게 부탁해도 구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구해 국을 만들었다"며 "몸국의 주재료인 몸(모자반의 제주어)도 예전에는 거친듯하면서도 국을 끓이면 제대로 된 맛이 우러나왔는데 요즘에는 양식해서 그런지 너무 부드러워져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양 원장은 "생태환경 자체가 너무나 변해 자연에서 나는 해조류와 식물도 변하고, 농가에서도 소위 돈이 되는 작물만 재배하다 보니 재래종 작물은 도태돼 사라지고 있다"며 "토종, 재래종이라는 것은 그 땅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정착한 식재료인데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농사를 짓다가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향토음식의 빗나간 상업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양 원장은 "제주가 관광지다 보니 향토음식을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본질이 사라져 버린 채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모습이 보여 속상하다"고 했다.

그는 "제주 향토음식점이라 해서 가보면 단가를 낮추려고 갈치조림을 할 때 비싼 제주산 갈치가 아닌 세네갈산 수입 갈치를 쓴다. 양념으로는 중국 또는 다른 지역의 고춧가루, 유전자변형 콩으로 만든 간장을 쓰고, 중국산 김치가 나온다"며 "제주산이라곤 물밖에 없게 된다. 이걸 제주도 밥상이라고 내놓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명인과 양 원장 모두 "향토음식은 그 지역의 고유문화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주향토음식점 종사자에 대한 교육, 재교육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만들어 제값을 받는 음식점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향토음식을 연구하고 보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제주향토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 모자는 "최근 20∼30년 사이 한국 음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져 있어 많은 사람이 원재료가 가진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제주향토음식을 제대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지 우리가 직접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중이 생각하기에 향토음식은 맛이 없어서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토종 제주의 식재료만을 써서 향토음식을 모범적이고 정직하게 만든다면 그 맛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늘어갈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 명인 이후 더는 제주향토음식 명인이 나오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보였다.

김 명인은 "하루빨리 제주향토음식 명인으로서 같이 호흡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며 "모든 제주향토음식을 골고루 잘해야 한다는 기준을 완화해 수산·축산·발효 등 분야별로 명인을 선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 양 원장에게 직접 명인에 도전해보지 않겠냐고 질문하자 "제주향토음식을 한지 이제 겨우 20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어머니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다. 제주향토음식은 조리법이 단순한 편이라 재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재료를 잘 알아야 원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있어 앞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며 30년은 채워야 도전할 생각임을 내비쳤다.

b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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