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인간을 유전학적인 방법으로 개선하는 것을 연구하는 우생학은 나치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와 연계되면서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겼다.
그러나 과학계에는 아직도 우생학 못지않은 인종주의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1962년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미국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다. DNA(디옥시리보핵산)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해 유전자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그는 2007년 인터뷰에서 "서구 사회의 아프리카 정책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모든 테스트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며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같기를 바라지만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고 말했다.
인종주의적 주장을 담은 연구 결과는 유명 과학 저널에도 실린다. 미국의 쌍둥이 짐 형제는 태어났을 때 헤어졌다가 30대 후반이 돼서야 다시 만났는데 둘이 결혼한 여자의 이름이 모두 '린다'였다. 둘 다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그때도 결혼한 여자의 이름이 모두 '베티'였다.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제임스'였고 키우는 개들 이름은 '토이'였다. 둘 다 같은 쉐보레를 몰았고 담배도 같은 브랜드를 피웠다.
미국 미네소타대 심리학자들은 짐 형제처럼 태어나자마자 헤어져 나중에 다시 만난 다른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연구한 결과 DNA가 지능, 성격, 키우는 개의 이름을 짓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1980년, 1987년, 2009년 세 번이나 소개됐다. 이 연구에는 우생학자, 분리차별주의자, 유전론자, 인종주의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해 온 개인자선단체 파이어니어 기금이 초기 연구자금을 댔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너선 마크스는 신간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음 펴냄)에서 이처럼 과학에 남아있는 인종주의를 폭로한다.
저자는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계층 간 차이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인종 간 차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 역시 문화적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과학에서 생물을 분류하는 '종'의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서도 인간의 유전자 변이는 침팬지의 유전자 변이보다 적어 인간만 유독 하위 종으로 나눌 근거가 없다.
책은 인종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역사에서 형성됐는지 뿌리를 살핀다. 18세기 중반 식물분류학자 칼 린네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몇 개의 서로 다른 대륙 덩어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린네는 지리와 얼굴 생김새, 의복, 법률 제도 등에 근거해 사람을 분류했고 이후 프랑스의 박물학자 뷔퐁이 여행기에서 다양한 종족들을 묘사하며 '인종'이라는 단어를 별생각 없이 사용했다. 이후 19세기에 '인종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자는 과학이 윤리와는 무관하며 과학의 선과 악은 실제로 적용될 때만 결정된다는 시각을 비판하며 인종주의는 '나쁜 과학'임을 이야기한다.
"인간 집단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인종 이론이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중략) 인간의 변이를 연구하는 것은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자연적 패턴을 연구하는 것이다. 반면 인종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 집단을 분류하고 계층화하는 이유,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연구하는 것이다. 인종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부여하는 것이다". 원제 'Is Science Racist?'. 고현석 옮김. 132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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