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방중 때 의전뛰어 넘는 예우로 "중국몽 비전 은연중 강조"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우는 확실히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황제급 예우'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고화된 권력에 자신감이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9일 사평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고궁(자금성<紫禁城>)에 초청해 대접한 예우방식은 1949년 신중국 성립 이래 '매우 보기 드문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이런 중국의 열정은 미국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굴기(堀起) 중인 중국의 현실적 국제관을 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중 첫날 자금성에서 이뤄진 정상간 회동을 통해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가 공언했던 '국빈방문 플러스(+)'의 의미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중국 외교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완벽한 세트의 국빈방문 활동 외에도 양국 정상이 '소범위내에서 비공식 친교행사'도 가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국빈방문은 통상 한 나라의 정상이 상대국 정상의 초청에 응해 방문한 뒤 최고의 예우와 의전으로 접대하는 것을 말한다. 고위층이 전용기 앞에 가 영접하고 이동 동선을 레드 카펫으로 까는 것을 포함해 군악대의 양국 국가연주, 21발의 예포 발사, 삼군의장대 사열 등 의전행사로 시작된다. 이어 양국 정상회담, 연설, 국빈만찬 초대 등이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원이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하자 정치국원으로 승진한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영접한 것부터가 이전과 달랐다.
일본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이, 한국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영접을 맡았던 것보다 격이 하나는 높은 것이라고 홍콩 명보(明報)는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4년 중국을 국빈방문했을 당시 영접자가 왕이(王毅) 외교부장이었던 것과도 대비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지난해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항저우(杭州) 공항에 도착했을 때 레드카펫도 준비돼 있지 않아 중국이 일부러 홀대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과도 딴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항 주차장에서 차량을 타고 곧바로 자금성으로 이동했다. 시 주석 부부가 고궁 보온루(寶蘊樓)에서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직접 맞은 것도 파격이었다.
두 정상 내외는 자금성의 중심인 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을 관람하며 황제가 걷던 길을 함께 거닐었다. 시 주석은 복원 작업을 거친 문화재를 보여주며 직접 문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황제를 위한 공연장이었던 창음각(暢音閣)에서 세편의 경극 공연을 함께 관람한 뒤 곧바로 건복궁(建福宮)으로 이동해 만찬연을 가짐으로써 '소범위, 비공식 친교'를 마무리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성 방문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8년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탄빈(譚斌) 고궁박물원 부원장의 수행을 받았던 것과 비교된다.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금성에 들렀을 때에도 당시 정신먀오(鄭欣묘) 고궁박물원 원장이 수행을 받아 3대 대전과 건청궁(乾淸宮) 등을 들러보는데 모두 45분이 걸렸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징 도착 직후 자금성에서만 반나절의 시간을 보냈다.
황실 연회장에서 만찬을 비롯한 시 주석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파격적 예우는 시 주석 개인의 권위가 이미 전임 최고지도자를 넘어섰음을 과시하는 것으로 미국을 향해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의미라고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설명했다.
시 주석은 집권 2기가 시작되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이념을 새로운 지도사상으로 당장(黨章·당헌)에 삽입시키고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있었던 '영수' 칭호를 받으며 권력을 한층 공고화했다.
중국 역사의 황금기를 소개하고 옛 황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함으로써 시 주석 자신의 집권 비전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에둘러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동방일보는 시 주석의 파격 예우가 "시 주석이 '중화민족 부흥'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떠날 때까지 남은 일정에도 또다른 '플러스'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명보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4년, 2006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전부 만났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을 만나는 파격이 연출될지에 관심을 보였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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