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60년 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요? 밤과 낮이라고 할 만큼 큰 차이죠."
6·25 전쟁 직후 독일(당시 서독)이 한국에 파견한 의료지원단에 속해 한국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했던 독일인 칼 하우저(87) 씨는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국내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독일 의료지원단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4년부터 5년 동안 부산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전쟁 부상자를 포함한 25만여 명을 치료하고 6천여 명의 출산을 도왔으며 한국 의료진 교육 활동도 했다. 하우저 씨는 117명(연인원 기준)의 독일 의료지원단 중 유일한 생존자다.
하우저 씨는 독일 의료지원단의 전기 기술자였다. 당시 부산에는 변변한 발전 시설도 없어 의료지원단은 독일에서 가져온 디젤 발전기 2대를 돌려 전기를 자체 생산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독일에서 온 젊은 하우저 씨의 눈에도 6·25 전쟁 직후의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곳이었다.
독일 의료지원단이 있는 독일 적십자병원은 부상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주말도 잊고 열심히 일했다.
주한 독일대사가 의료지원단을 격려하려고 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대사가 타고 온 자동차의 물건들이 도난당하기도 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는 가끔 부산 앞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 음식은 '해장탕'이라고 했다.
서울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다. 경부선도, 경부고속도로도 없던 당시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약 6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온 하우저 씨에게 서울의 발전상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마치 지하세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황폐한 곳이었죠. 지금은 삼성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을 배출한 나라이고요. 독일도 재건에 40년이 필요했지만, 한국의 지난 60년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우저 씨는 지난 7월 독일 베를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화제가 됐다. 당시 독일 방문 중이던 문 대통령은 한국이 어려운 시절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해 도와준 독일 의료지원단에 감사를 표시했다.
"문 대통령이 저를 보고 독일 병원이 좀 더 오래 의료지원 활동을 했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당연히 한국에 더 머물렀을 것'이라고 답했죠."
부인과 두 손녀 등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 하우저 씨는 오는 11일 젊은 시절 활동했던 부산 독일 적십자병원 터를 찾아 기념비에 헌화하고 참배할 예정이다. 하우저 씨와 함께 의료지원단에 속했던 수간호사 고(故) 샤롯데 코흐 수녀와 라이너 숍 박사 등의 유가족도 함께한다.
이들은 같은 날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리는 6·25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행사인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에도 참석한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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