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안 풀릴 때 포커페이스 유지하려고 노력"
"내년에 또 나달과 만난다면요? 좀 더 좋은 경기 해야죠"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한국 선수로는 14년 10개월 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정상에 우뚝 선 정현(21·삼성증권 후원)이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세계 랭킹 54위 정현은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ATP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 결승에서 안드레이 루블레프(37위·러시아)를 3-1(3-4 4-3 4-2 4-2)로 제압했다.
한국 선수가 ATP 투어 단식을 제패한 것은 2003년 1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이형택(41) 이후 정현이 두 번째다.
정현은 경기 후 코트 위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 세계 21세 이하 유망주 8명을 엄선해 진행된 이번 대회에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한 정현은 결승 상대였던 루블레프에게도 "함께 결승전을 치러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자"고 위로를 건넸다.
루블레프는 이날 2세트 초반까지 리드를 잡았다가 정현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뒤로는 라켓을 코트 바닥에 내팽개치는 등 여러 차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시상식에서도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현은 "ATP 관계자들과 이탈리아 팬 여러분, 오늘 여기에 와준 관중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나를 도와준 스태프들과 가족, 팬 여러분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이후 공식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정현은 "매우 행복하다"며 "루블레프와는 조별리그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경기를 했는데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1세트를 먼저 내주고, 2세트에서도 초반에 브레이크를 당해 화가 나고 조바심도 생겼다"며 "그래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해 기자회견장에 폭소가 터지게 했다.
정현은 "상대가 초반 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에 2세트부터 스타일을 바꿨다"며 "초반에 대각선 샷을 구사하다가 2세트 초반부터 다운더라인 공략으로 변화를 준 것이 승리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2세트에서도 끌려다니는 상황에서 '이대로 지면 후회밖에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서 해보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그것이 먹히다 보니 상대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뒤집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2017 시즌을 마친 정현은 "좋았던 때도 있었고 힘들었을 때도 많았다"고 돌아보며 "투어 대회 4강도 가보고 메이저 대회 32강에 간 것은 수확이었지만 프랑스오픈 끝나고 컨디션이 좋았을 때 부상으로 쉬게 된 점은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올해 라파엘 나달(1위·스페인)과 두 번 만나 모두 패한 그는 '내년에 다시 만난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물음에 "세계 최고 선수와 붙어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며 "내년에 다시 대결 기회가 생기면 좀 더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현은 "올해도 프랑스오픈 3회전까지 진출한 뒤에 부상으로 잔디코트 대회를 뛰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그런 기복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작년에도 부상 때문에 몇 달을 쉬었는데 이렇게 좋은 날을 상상하고 기다리며 버틴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올해 창설된 21세 이하 대회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이벤트 경기라고 여겼는데 출전한 선수들이 투어 대회 우승 경력도 있고 모두 만만치 않았다"며 "다들 강한 승부욕을 드러내며 경기에 나와 나도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런 결과가 우승까지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초대 챔피언에 오른 정현은 "이렇게 의미 있는 대회 우승으로 시즌을 마쳐 기쁘고 이 대회는 앞으로도 좋은 대회로 유지되기를 바란다"며 "시즌이 끝났으니 당분간 쉬면서 2018년을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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