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 "삼성합병 문제없다" 판결에도 '국민연금 손해' 인정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법원이 사실로 인정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등 남아있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영 부장판사)는 14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삼성합병 결정 과정에 청와대가 관여한 점을 인정했다.
앞서 1심은 문 전 장관이 연금공단이 삼성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과정에 청와대 개입이 있었는지를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은 문 전 장관이 '삼성 합병에 대한 연금공단 의결권 행사를 잘 챙겨보라'는 취지의 박 전 대통령 지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김진수 전 보건복지비서관 등을 통해 복지부 직원들에게 합병 안건을 챙기도록 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 투자위원회의 찬성 의결 결과를 보고받는 등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안 전 수석과 친분이 있는 데다 업무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문 전 장관 역시 이런 사정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합병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은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도 핵심 쟁점이다.
특검과 검찰은 삼성합병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치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삼성합병을 돕는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에 나서는 등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골자다.
뇌물 혐의가 입증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정황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삼성합병 문제가 청와대와 무관한 개별 기업의 경영 현안이었다는 논리가 깨질 수 있다.
문 전 장관의 항소심 판결은 청와대가 개별 기업의 합병 문제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게는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과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에 문 전 장관의 항소심 판결문을 뇌물 혐의의 입증 수단으로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개입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승마 지원 등이 뇌물 거래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개별적으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국민연금이 삼성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 위법이 있었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본부장이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 측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법원의 판단에는 홍 전 본부장이 투자위원들에게 조작된 합병 시너지 수치를 설명하면서 찬성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대주주에게는 이익을, 국민연금 측에는 손해를 가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삼성합병 자체가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지난달 19일 삼성합병 무효 확인 소송 1심 판결에 견줘볼 때 법리 판단에 온도차가 있다는 해석을 낳는다.
당시 민사소송 재판부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 대해 "당시 공단을 대표한 이사장이 합병의 찬반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에 보건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여러 사정에 비춰 공단 투자위원회의 찬성 의결 자체가 내용 면에서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설명도 내놨다.
결국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두고 민·형사 사건 상급심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항소심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에서도 삼성합병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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