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청약잔여분 모집 '과열'…'밤샘·떴다방' 등 부작용

입력 2017-11-15 07:01   수정 2017-11-15 10:43

아파트 청약잔여분 모집 '과열'…'밤샘·떴다방' 등 부작용

청약통장·다주택 여부 안따지자 투기수요 몰려

잔여가구 수도 모르고 '무작정 줄서기'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사례1.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래미안 갤러리 앞에는 평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수백m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들은 '래미안 DMC 루센티아' 미계약분 25가구를 '추첨'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총 1천500여 명이 계약금 1천만 원을 현찰로 지참하고 모여들었고, 60대 1의 경쟁률로 미계약분은 '완판'됐다.

#사례2. 지난 10일 금요일 저녁 7시께 중랑구 면목동에 공급되는 '면목 라온프라이빗'의 모델하우스 앞에서 줄서기 경쟁이 시작됐다.

11일 오전 10시부터 일부 잔여 가구에 대한 계약을 '선착순'으로 진행한다는 회사 측 연락을 받은 이들이 앞번호를 차지하려 모여든 것.

일부는 15시간에 걸친 '밤샘 줄서기'를 했고, 수백만 원을 받고 '앞번호'를 팔겠다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정부가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을 강화하면서 최근 분양한 단지들에서 부적격 당첨자의 미계약 물량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건설사들이 청약 잔여분을 추첨 또는 선착순 방식으로 파는 과정에서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수요자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미계약분' 나오면 수요자 '우르르'…20~30대·다주택자 관심↑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이 서울 지역 분양 단지의 미계약 물량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추첨' 또는 '선착순' 판매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잔여분 판매는 청약통장 유무, 다주택 여부를 묻지 않고 당첨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정부의 청약 규제 강화와 맞물려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삼성물산이 지난달 14일 송파구의 래미안갤러리에서 진행한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강남포레스트' 미계약분 36가구 추첨에는 1천200명이 몰려 3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참여한 1천200명은 '현장에서 5천만원의 1차 계약금을 내고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조건에 맞춰 불과 하루 이틀 만에 5천만 원을 현금으로 마련해왔다. 미계약 물량은 30분 이내에 '완판'됐다.

지난달 28일에는 현대산업개발이 서초동 '서초 센트럴 아이파크'의 미계약분 40여 가구를 선착순으로 분양한 가운데, 모델하우스에는 3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선착순 분양 전날부터 일부는 밤샘 줄서기를 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역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공급하는 '해모로 프레스티지'의 미계약분 10여 가구에 대해 선착순 판매를 했다.

견본주택을 방문해 연락처를 남긴 이들에게 지난 10일 오전 10시에 이 같은 사실을 공지하고 당일 오후 3시부터 도착하는 순서대로 계약을 진행했다.

추첨 또는 선착순을 통한 미계약 물량 판매는 청약통장이 없는 경우나 다주택자도 참여할 수 있고 절차가 간편하다.

이 때문에 중소형 가점제 100% 적용 등 청약 조건 강화로 불리해진 20~30대 실수요자들이나 청약 1순위 자격이 없는 다주택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주택자, 1순위 당해지역 등 청약 자격이 강화되다 보니 아예 청약을 못 넣는 사람들이 미계약분만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물량이 나왔다 하면 몰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투기수요 유입·청약자 불편 '부작용'…"개선책 필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청약 과열 양상이 지속되고 청약자들의 불편도 잇따르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착순 분양으로 인한 밤샘 줄서기나 줄값 지불, 자리 거래 같은 문제가 벌써 불거진 데다, 미계약분 계약 현장마다 '떴다방(이동식중개업소)'이 모여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말 모델하우스 개장 전부터 건설사가 미계약 물량 매수 희망자를 모집하는 '내 집 마련' 신청을 금지하면서 "사전 예약 방식이 '투기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었는데, 나아지거나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또 각 건설사의 분양 단지마다 미계약분 계약 방식이 제각각이고, 이를 공지하는 방식도 모두 달라 참여 기회에 제약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서울에서 분양한 단지에 청약을 넣어온 A씨는 "홈페이지 구석에 불시에 공고를 낸다거나, 더 나아가 홈페이지 같은 공식 루트가 아니라 일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하루 전날 잔여 가구 분양 일정을 알린다거나, 잔여 가구 수 및 평형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라온건설은 '면목 라온프라이빗' 미계약 물량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은 채 '선착순' 계약을 진행한다고만 밝혀 일부가 밤샘 줄서기를 했으나, 잔여분이 10가구 뿐이어서 나머지는 허탕을 쳤다.

이같은 지적이 제기되자 일부 건설사는 수요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쉽게 미계약분 추첨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현대건설은 서울 상일동 '고덕 아르테온' 아파트 미계약분을 온라인 추첨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확정했다.

정당계약과 예비당첨자 추첨 이후에도 미계약분이 있으면 27일 홈페이지에 남은 평형과 가구 수에 대한 공고를 하고 28일 온라인 청약을 받은 뒤 30일 당첨자를 발표하고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분양하는 대부분의 단지에서 기존에 불거진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청약 잔여분에 대비한 예비 당첨자 비중을 더 늘리는 등의 방식이 거론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미분양이 쌓여서 빨리 처리해야 할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미계약분에 대한 원칙을 정비해서 자의적으로 배분되는 걸 막아야 한다"며 "어떤 절차를 통해 누구한테 먼저 공급할지 등 큰 원칙 정도는 명쾌하게 세워져 있어야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yjkim8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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