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영화는 빛과 소리를 모두 활용한 공감각 매체인 탓에 시청각장애인에게 장벽이 높다. 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화면을, 자막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영화가 제작된다. 그렇다면 화면과 소리의 해설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배리어프리를 통한 장애인의 영화 체험은 비장애인의 그것과 동일할까.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은 멜로 드라마의 전개방식을 빌어 이런 질문에 대답을 시도한다. 영화는 극장에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흔들리는 카메라가 가깝게 따라가며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꼽는 남자의 얼굴은 체념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다가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 분)는 영화의 음성해설 제작을 위한 모니터링 모임에 참여한다. 그러나 초보 작가 미사코(미사키 이야메)의 해설은 마뜩잖다. 주관이 개입된 화면 해설은 영화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고 나카모리의 자존감마저 건드린다. 반대로 주관을 배제하고 관객의 감정과 상상력에 의미를 맡기는 해설은 무책임해 보인다.
나카모리는 미사코의 해설을 질타한다. 두 사람은 논쟁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한발씩 다가가지만 달달한 연애를 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영화는 음성해설을 함께 검토하는 장애인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영화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고, 그들은 영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저희는 영화를 볼 때 화면을 감상한다기보다는 광대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해요. 영화는 거대한 세계를 경험하는 거예요."
실제로 시각장애를 가진 배우가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내놓은 이 대사대로라면,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영화의 본질에 더 깊숙이 다가가는 셈이다. 비장애인 관객은 영화 내내 이어지는 미사코의 해설을 들으며 장애인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나카모리는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빛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카메라를 잃었다. 극도의 상실감에 빠진 나카모리가 영화로 또다른 빛을 찾아가는 과정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으로 읽힌다. 나카모리와 미사코가 석양을 마주하는 장면의 영상미는 가와세 나오미의 명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일본 감독 중 칸영화제 최다 초청 기록(7회)을 지닌 가와세 나오미는 전작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음성해설에 감명받아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에 주는 에큐메니컬상을 받았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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