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뀐 후 사법처리 반복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박근혜 대통령 측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모두 구속 위기에 처하면서 이미 두툼한 '정보기관장 수난사'에 또다시 새로운 페이지가 더해졌다.
재임 중 임명권자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아 '소리 없는 헌신'을 다하고, 정권이 바뀐 후 사법처리되는 패턴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전 원장은 2012년 총선·대선 당시 '댓글 부대'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이듬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도중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던 그는 지난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시 법정 구속됐으며,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국정원의 각종 정치 공작 사건에서도 법적 책임을 질 공산이 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사상 첫 내부 승진자로 조명받았던 김만복 전 원장은 2011년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와 인터뷰 등에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당해 기소유예됐다. 그는 2007년 12월 대선 전날 방북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외부에 유출했다가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의 임동원·신건 전 원장은 이른바 '삼성 X파일' 등 불법 감청을 묵인·지시한 혐의로 2005년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형 확정 4일 만에 사면돼 논란이 일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를 이끈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거짓 폭로인 '북풍 사건' 등에 연루돼 징역 5년에 처해졌다. 그는 이후 안기부 예산으로 총선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추가 처벌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2·12 군사반란 가담과 각종 5공 비리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수차례 구속됐다. 함께 사법 처리된 유학성 전 안기부장은 재판 중 병사했다.
안기부의 전신 중앙정보부에서 박정희 정권 6년 3개월을 중정부장으로 재직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퇴임 후 미국으로 망명해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공작을 폭로하는 등 유신정권을 비난하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저격한 뒤 이듬해 5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초대 중정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부정축재 혐의로 재산이 몰수되고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국가 안보의 보루라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퇴임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개인 비리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권력을 동원해 부당하게 정치에 관여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검찰의 이번 국정원 수사를 계기로, 정보기관이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작업이 성과를 거둘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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