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다음 날 출국해 8일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3개국을 돌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등 다자 외교무대에도 섰다. 문 대통령은 이 기간에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와 연쇄회담을 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덮고 1992년 수교 이후 25년 만에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전기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문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4강 중심의 외교를 다변화해 아세안을 향한 '신(新) 남방정책'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는 아세안과의 관계를 5년 안에 4강 수준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한·아세안 미래공동체'구상도 담겨 있다. '문재인 외교'가 어디를 지향할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다각적인 정상외교를 통해,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대한 재확인을 끌어냈다. 북핵 해결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이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통한 핵보유국 선언 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 군사옵션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돼 왔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북핵 해법은 두 갈래다. 하나는 북한이 조속히 비핵화 대화에 임하도록 미국·중국·일본 등 국제사회와 함께 외교적·경제적 제재 등 전방위로 압박을 지속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진정한 핵포기 의사를 밝히면 '동결→폐기'라는 2단계 북핵 해법에 따라 단계별로 북한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도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화 여건이 마련되느냐다. 북한이 지난 두 달간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있고 이를 미국도 평가하고 있어 대화를 위한 북미 간 물밑 교감설이 나돌고 있다. 무엇보다 집권2기를 맞이한 시진핑 주석이 오는 17일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특사로 보낸다. 북·중 간 대화가 잘 진행되어 북미 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새롭게 떠오른 과제는 미국이 밀어붙이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동참하느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작년 8월 내놓은 이 구상은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이 중심이 돼 아태 지역의 항행의 자유와 법의 지배,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지만, 과녁은 '중국 포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 선정을 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핵심축'이라면서 동참을 요청했다. 북한 방어를 위해 출범한 한미동맹을 이제 중국 포위로까지 그 역할을 확장하자는 얘기다. 정부는 일단 답변을 자제했다. 이 구상이 경제적 성격을 넘어 안보적 성격도 띠고 있어서다. 귀국에 앞선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축으로 말씀해 그 취지를 처음 듣는 우리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우리의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임해야 할 사안이다.
이 사안과 맞물려 중국과의 사드 갈등 봉합과 한중 관계 복원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밝힌 '3불' 입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 국감에서 '우리 정부는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일의 공동전략으로 자리매김한 '인도·태평양 구상'과 충돌할 소지가 적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북핵 문제 등을 명분으로 미일 동맹을 더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을 위해 한국의 동참을 압박할 경우 우리나라는 난감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3불 입장' 표명은 활용하기에 따라선 우리 외교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어 보인다.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려서도 안 된다. 정부 외교안보팀의 지혜로운 대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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