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익갤러리 개인전…한지 벗어나 다양한 재료 시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고대 로마 유적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이드 설명을 듣는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는 돌기둥 위에 올라 졸음을 쫓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 걸린 최영걸(49) 작가의 '에페스의 원주민'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서양 종이에 먹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우리 풍경을 화선지에 먹과 채색으로 담아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어떠한 작업에 매진할지 고민하던 시기,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사다 준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이탈리아 신부 출신으로 청 궁중 화가가 된 낭세령(郎世寧) '백준도'로, 100마리 말을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필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을 그려야 하나 생각했을 때 어릴 적 '백준도'가 문득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구상과 섬세한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런 쪽으로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17일 개막하는 이화익갤러리 개인전 '성실한 순례'도 감탄을 자아내는 세밀한 풍경화들이 주를 이루지만, 여러 면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국내의 자연에 머물렀던 작품 무대는 터키 에페수스 고대 유적지, 거리 음악가가 연주하는 체코 프라하 거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전시장 등 외국으로 이동했다.
작업 재료로 화선지만 고집하지 않고, 수채화용 캔버스와 서양 종이 등에도 손을 뻗친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작가도 처음에는 "내가 추구하는 맛이 그만큼 안 나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지만, 부단한 연습을 통해 재료 확장에 성공했다.
사진처럼 보이는 것도 끊임없는 작업으로 밀도가 한층 증가한 덕분이다.
새벽까지 그림을 그려도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2개월가량이 걸릴 정도로 수행에 가까운 과정이다.
개막 전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 붓의 털 뭉치 지름이 5mm 정도였는데 이제는 1mm 정도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2층에 걸린 대작 '화양연화'는 기존 화선지 작업에 익숙한 관람객들이 반길만한 작품이다.
전시는 12월 7일까지. 문의 ☎ 02-730-7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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