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패배 후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 선수들 맞아
미팅 소집해 "좋은 경기 했다"며 다독이기도
(도쿄=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16일 일본과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개막전은 선동열(54)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데뷔전이자 현장 복귀전이었다.
2014년 KIA 타이거즈 감독을 끝으로 잠시 현장을 떠났던 선 감독은 올해 7월 국가대표 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선 감독은 감독 데뷔전에서 일본에 7-8로 패했다.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신들린 듯한 불펜 운용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대신 젊은 선수들이 위축하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제대로 통했다.
24세·프로 3년 차 이하로 짜인 이번 대표팀은 엔트리 25명 가운데 도쿄돔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는 선수가 전무했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도쿄돔을 마치 고척돔처럼 누볐다.
출전한 선수마다 거둔 성과는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적어도 대표팀에서 도쿄돔의 분위기에 눌려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선 감독의 달라진 부드러운 리더십이 효과를 본 것이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선 감독은 2년 연속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며 화려하게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선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감독과 선수는 일정 간격 거리를 둬야 한다는 감독관으로 선수를 대했다.
선 감독은 강력한 불펜을 앞세워 승승장구했고, 불펜 야구는 KBO리그의 흐름이 됐다.
그러나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서는 아픔을 맛봤다.
계약 첫해인 2012년 5위를 거둔 선 감독은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8위에 그친 채 계약 기간 3년을 채웠다.
구단은 선 감독에게 2년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를 철회했다.
이는 선 감독에게도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던 타이거즈 팬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현장에 돌아온 선 감독은 달라졌다. 선수들과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야구 관계자들과도 격식을 내려놓고 편하게 대화한다.
처음에는 선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참던 선수들이 이제는 먼저 다가간다.
대표팀의 한 선수는 "선동열 감독님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대표팀에 합류할 때는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같이 지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대표팀 분위기도 자유롭게 풀어주시고, 덕분에 다들 즐겁게 운동하며 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본전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7-8로 역전패해도 선 감독은 웃는 얼굴로 선수를 격려했다.
더그아웃 앞에 나가서 선수들에게 손뼉을 쳐줬고, 투수 이민호에게는 '씩씩하게 잘 던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선 감독은 경기 종료 후 곧바로 선수단 미팅을 소집해 "좋은 경기를 했다. 진 건 억울하겠지만, 여러분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다독였다.
2017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통이다. 선수들과 소통하며 눈높이를 맞춘 선 감독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첫 단추를 무사히 끼웠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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